“최선을 다해도 누군가는 죽을 수 있어요”
‘안무서운회사’의 유승규 대표(32)는 무서운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최근에도 그는 은둔 경험을 가진 친구의 안타까운 마지막을 겪어냈다. 유 대표가 은둔자들의 속 깊은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20대에 5년간 직접 은둔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립은둔청년의 문제가 개인이 해결할 사적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인식을 갖게 된 후 그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2월 강북구 ‘사회적 경제통합 지원센터’에 입주해 있는 ‘안무서운회사’를 방문해 유승규 대표를 만났다. 이 회사의 특징은 ‘힘듦을 대화로 나누는 문화’이다. 회사에서 개인적 어려움을 터놓아도 비난 받지 않는데, 이는 ‘말을 못 해 병드는 걸 막고 싶기 다’는 대표의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안무서운 회사는 사무실 근처 10분 거리 가정집에 고립은둔청년들의 자활을 돕는 공동생활 형태의 셰어하우스도 운영 중이다.
자립 프로그램과 협업 경험이 변화의 동력
유승규 대표가 의미 있는 변화의 첫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건 한 단체를 알고 나서부터다. 일본의 비영리단체 ‘K2 인터내셔널(이하 K2)’은 ‘기분 나쁜 채로 있어도 되는 곳’을 지향하며 고립은둔청년의 삶에 섣부르게 개입하는 대신 장기적 회복을 돕고자 했다. ‘내가 나인 채로 있어도 되는 곳’에서 내 상태를 오롯이 이해해 주는 따뜻한 분위기로 사회생활에서 직면하게 되는 두려움이 줄었고, 사회적 가족도 만들어진다. 유 대표는 K2의 직원으로도 일했는데, K2는 오랜 적자로 결국 폐업했다. 밀도 높은 공동체가 사라진 상실감은 매우 컸다.
“솔직히 저도 설 자리가 필요했어요”
유 대표는 은둔이 오히려 독특한 스펙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K2에서 나온 이후 동료 4명과 ‘안무서운회사’를 설립했다. 팀워크가 좋았다. 운 좋게 서로 담당할 업무 포지션도 잘 맞아 상호보완이 되었다. 그리고 밑바닥을 기는 심정으로 하나씩 모양새를 갖춰가며 지금의 사업 형태를 띄게 되었다. 그렇게 은둔하는 청년들에게 하나 둘 손을 뻗기 시작하며 그들이 세상에 새로이 설 땅을 개척해왔다.
[업무 중인 ‘안무서운회사’ 직원들과 유승규 대표 ⓒESG.ONL]
목표의 진화와 사회적 책임감
안무서운회사는 은둔 생활 중인 자식을 둔 ‘부모코칭(히키시그널)’, 고립은둔청년 대상 프로그램 ‘은둔고수’ 서비스로 알려져 있다.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는 망하지 않기였어요”
K2 폐업 후 이전에 상담을 하며 돕던 친구가 다시 고립되는 걸 보면서 유 대표는 큰 책임감을 느꼈다. 실어증을 극복했던 친구가 다시 은둔에 들어간 사례는 특히 안타까웠다. 함께 활동했던 친구의 죽음을 맞을 때는 슬픔을 넘어 일에 대한 회의감마저 몰려 오곤 했다. 하지만 그가 이 일을 포기하지 않아야 할 절실한 이유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피해를 주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고립청년 문제의 해법에 대해 이야기 하는 유승규 대표 ⓒESG.ONL]
54만 명의 고립청년,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34세 고립은둔청년 인구는 54만 명.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숫자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지고, 무한 경쟁 사회에서 상처받아 집 밖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청년들이 늘었다. 유독 전세계에서 일본과 한국에서 이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비슷한 문화권을 배경한다는 분석이 있다. 체면을 중시하고 눈치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큰 원인이라 것이다.
고립은둔청년으로 인해 발생하는 가족 붕괴는 특히 심각한 사회적 문제 중 하나다. 고립은둔청년 문제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는 가족까지 포함해, 이 문제로 고통받는 인구가 2배, 3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수십 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던 자식을 둔 부모가 부양 능력을 잃고, 치매에 걸리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사회화가 어려워진 청년들, 그대로 중장년이 되는 이들을 사회는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청년들의 결혼이나 출산율에 대한 고민만큼 고립은둔청년 문제에 대한 시름이 깊어진다.
공공기관과 함께하는 은둔고립 청년 지원사업
유 대표는 은둔고립 지원 관련 최초의 공공 사업들이 ‘안무서운회사’에 맡겨지고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은둔고립청년 대상 사업 ‘서울청년기지개센터’의 ‘방문상담 방법론’ 수립은 안무서운회사가 함께 진행했다. 현재는 보건복지부와 함께 4개 광역시 ‘청년미래센터’의 ‘셰어하우스 종사자를 위한 가이드북’을 제작하는 등 정부, 공공기관과의 협업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특히 서울청년기지개센터와 협업할 때 가장 이해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합리적인 성과지표와 예산 편성을 추진 초기부터 함께 이야기하며 조율할 수 있었다. 공공기관과 함께 일하다 보면 현장의 실상과 대응 마련이 합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에서의 경험과 같이 민간 단체가 공공과 현실을 잇는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는 제안한다. 은둔의 원인은 너무 다양하고, 소수의 기관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다.
['안무서운회사'와 함께하는 기업들 ⓒNotscary]
우리 사회의 관심 만큼 인식개선의 기회도 열려
‘안무서운회사’와 오랜 기간 함께 일해 온 ‘청년재단’은 은둔고립청년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유 대표와 같이 은둔고립생활을 극복하고 사업까지 시작한 성공 사례는 청년재단에게도 의미가 크다. 그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청년재단의 지원이 이 일을 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사회혁신 생태계를 지원하는 ‘브라이언 임팩트’ 재단에 펠로우로 선정된 안무서운회사는 카카오로부터 4년간 매월 300만 원씩 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브라이언 임팩트 재단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인적 교류는 기업과의 협업 기회를 열어주는 발판이 되었다는 점이 가치있다.
예를 들어 SK행복나눔재단은 ‘안무서운회사’의 콘텐츠 사업에 5,000만 원을 쾌척했다. 이를 통해서 안무서운회사는 고립은둔청년 문제에 대한 인사이트를 늘리기 위한 해외 취재 등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콘텐츠가 게재된 안무서운회사의 유튜브 채널을 보고 문의도 늘었다. 이렇게 공개된 콘텐츠로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인식의 개선을 노려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우리사회의 여러 조직과 협업의 가치를 쌓아가고 있는 유 대표는 기업과의 성공적인 협업을 위해 소통 담당자와 기업의 의사결정권자 모두의 이해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카카오 '브라이언 펠로우', SK행복나눔재단 컨퍼런스 유튜브 ⓒNotscary]
이상적 사회연결 모델은 ‘위축된 상태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
일본에는 고립은둔청년들이 곰발바닥 모양의 장갑을 낀 채 작은 구멍을 통해 내미는 손 만으로 커피를 전해주며 사회와 교감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우리나라도 ‘곰손카페’라는 이름으로 벤치마킹 된 이 사례는 고립은둔청년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계기를 제공했다. ‘위축이 된 상태에 있더라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유대표는 호소했다. 히트작이 많기로 유명한 일본의 대형 출판사 슈에이샤는 인상적인 사회복귀 모델을 제시한다. 이 회사는 은둔도 스펙으로 인정해 만화 매니아인 은둔고립청년들을 서점에 고용하여 인생 만화를 추천하는 카운셀러로 일하게 한다. 유 대표는 이러한 사례와 같이 은둔고립청년들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사회로의 복귀를 도울 수 있는 모델이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고립은둔청년들이 게임회사와 함께 게임화면에 언제든 고립은둔청년들이 정신상담을 받을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둔다면 어떨까? 은둔고립청년 중 아무것도 안 하는 이들보다 게임을 하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예후가 좋다고 한다. 적어도 게임 안에서 힐링의 요소와 연대를 느끼고, 세상과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회사들과는 면허 취득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유 대표는 “10년 은둔한 사람을 경쟁 사회에 바로 내던져 적응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며 은둔고립청년 대상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려움을 겪는 청년 대상 프로그램들이 청년의 새 시작을 나서서 응원하고, 우리 사회가 그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고립은둔청년들에게는 큰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안무서운 회사가 꿈꾸는 청년들의 건강과 조직의 안정
유 대표는 앞으로 5년 내 조직 안정성을 다지고, 7년 차에는 자체 수익 모델을 만드는 것을 안무서운회사의 목표로 삼는다. 은둔고수 인력을 정예화하고, 가이드북으로 노하우를 정립하며, 기부금 모금과 영상 콘텐츠 홍보로 계속해서 조직의 활동기반을 닦을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청년들의 마음 건강에 초점을 맞춘 코리빙 하우스 사업도 꿈꾼다. 나아가 은둔고립청년들 버전의 결혼정보회사를 만들기 위한 구상도 진행 중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성장 동력은 결국 사랑이라는 걸 우린 모두 알고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회사운영에 대한 유 대표의 현실적 고민도 크다. 계약종료를 앞둔 셰어하우스가 있어 거주하는 멤버들이 집을 비워야 할 상황이다. 이 경우 누군가는 재고립 될 수 있다. 그래서 고립은둔청년들의 주거 안정성을 중요한 과제로 보는 유 대표는 절실히 후원기업을 알아보는 중이다.
함께 만드는 지속가능한 사회 안전망
고립은둔청년 54만 명 시대에 이들을 집 밖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은 결코 당사자인 청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가족과 우리 사회 전체를 지키는 일이다. 안무서운회사의 유승규 대표는 고립은둔청년 문제 더욱 공론화해 민간과 공공, 개인과 사회가 함께 이 문제를 풀어가며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드는 지속가능한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