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먼 미래인 2050년이 아니라 1968년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1968년으로 돌아간다면, 그해 어느 신문 가판대 앞에 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둘러싼 논쟁 기사를 직접 읽어볼 것이다. 명절에 우리는 고속도로에서 교통 체증을 걱정하고, 휴게소 음식을 이야기하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도착 시간을 확인한다. 지금의 우리에게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는 미래가 아닌 일상이다.숫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래 가치하지만 1968년의 사람들에게 경부고속도로는 일상이 아닌 모험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앞서 자동차도 많지 않은 나라에서 왜 고속도로를 지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등장했다. 국가 재정은 넉넉하지 않았고, 도로 포장률도 낮았다. 당시 건설 반대자들은 한국의 경제 상황과 자동차 보급률을 고려할 때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시급하지 않고, 재정적으로도 현명한 결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967년 한국의 차량 대수는 약 6만 대, 1969년 도로 포장률은 8%에 그치니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1968년 월간지 <세대> 1월호에서 당시 신민당 소속 박영록 국회의원은 "장차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는 하나 너무 조급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국민 부담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김대환 교수도 제2차 경제개발계획에 없던 고속도로 사업을 새로 밀고 나가면, 국민 경제에 부담이 늘어나 경제개발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 공사 현장 © 국가기록원 ]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의견을 비웃기는 어렵다. 실제로 가난한 나라에서 수백억 원짜리 도로를 짓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론자들이 모두 미래를 보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다만, 그 우려에는 아직 오지 않은 현실이 담기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의 가치는 착공 당시, 도로 위를 오가는 자동차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길은 자동차가 많아서 지어진 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동차와 물류 시대를 불러낸 길이기도 하다. 경부고속도로가 기존 철도·국도와 중복을 피하면서 수도권, 영남공업지역, 인천항과 부산항을 연결하는 대동맥 역할과 경제개발의 중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무모한 도전이 남긴 질문이번에는 타임머신을 조금 더 움직여 1970년 포항으로 가보자. 그곳에서도 비슷한 말들이 오갔다. 철광석도 부족하고, 자본도 부족하고, 기술도 부족한 나라가 대규모 제철소를 짓겠다고 했다. 지금의 우리는 포항제철(POSCO)을 한국 제조업의 기초 체력으로 여긴다. 그러나 당시에는 지금 포항제철의 성공이 당연한 성공이 아니었다. 당시 제철소 건설을 향한 비판은 더 노골적이었다.과거 논쟁을 보면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제철소 건설을 "경제성이 없고 자원 낭비며, 전시용"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에서는 차라리 철강을 수입해 사용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국회에서는 원료도 없고 쓸 곳도 없는 제철공장을 왜 짓느냐며 문제 제기를 했고, "차라리 쌀 부족으로 인한 식량난부터 해결하자"는 식의 비판까지 등장했다. [포항제철소 제 3고로 본체공사 © 포항역사박물관]당시의 계산으로는 경부고속도로도, 포항제철소도 전망이 불안했다. 비용은 선명했고 편익은 흐릿했다. 지금 당장 투자가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지만, 그 돈이 훗날 어떤 산업 지도를 만들지는 누구도 정확히 계산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의 공통된 운명일지 모른다.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은 거의 없다. 경부고속도로도 처음에는 낭비처럼 보였고, 포항제철소도 처음에는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질문이 바뀌었다. "왜 지었느냐"가 아니라 "없었다면 지금 어땠을까"가 된 것이다.전환의 비용과 지연의 비용, 무엇이 더 비싼가물론 이 이야기를 과거 개발도상국가의 성공담만으로만 여겨서는 곤란하다.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소의 역사에는 지역 불균형, 민주적 토론의 부족, 노동의 희생이라는 그림자도 함께 있다. 그렇기에 오늘 한국 사회가 마주한 '에너지 전환'이라는 화두를 다룰 때, 그 시대 방식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다만, 그럼에도 과거의 사례들은 현재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미래의 인프라는 지금의 경제성만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한가. 재생에너지를 더 늘려야 하는가, 송전망을 얼마나 빠르게 지어야 하는가, 전력시장과 요금 체계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질문은 많고 답은 쉽지 않다. "경제성이 없다", "국민 부담만 늘어난다", "전기요금이 오른다", "산업 경쟁력이 약해진다"와 같은 반대 논리도 익숙하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 논리가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니콜라스 스턴의 보고서 '기후변화의 경제학' © Cambridge University]에너지 전환에는 실제로 비용이 든다. 태양광과 풍력만 늘린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다. 송전망 건설, 전력시장 개편, 지역 수용성, 산업 구조 전환이 함께 가야 한다. 누군가는 비용을 부담하고, 누군가는 기존 질서의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미래를 고려한다면 지금 질문이 몇 가지 더 생긴다. 에너지 전환에는 비용이 얼마나 드는가, 그리고 에너지 전환을 늦추면 무엇을 잃는가. 영국의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Nicholas Stern)이 2006년 발표한 스턴 보고서 '기후변화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Climate Change)'에서 던진 핵심도 이 지점에 있었다. 니콜라스 스턴은 보고서에서 기후변화에 강하게 조기 대응하는 편익이 대응하지 않을 때의 경제적 비용을 크게 앞선다고 주장했다.2050년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지금의 신문을 펼쳐본다고 상상해본다. 그 사람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둘러싼 논쟁, 전력 인프라를 둘러싼 갈등, 탄소배출을 중심으로 전기요금과 산업 경쟁력을 둘러싼 여러 공방을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1968년 경부고속도로 논쟁을 읽는 지금의 우리처럼 "그것이 왜 그렇게 논란이었지?" 하며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물론 단정할 수는 없다. 에너지 전환은 더 복잡하고, 해당 사안에는 더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다. 그래도 바라는 장면은 있다. 2050년의 사람들이 과거를 돌아봤을 때, 에너지 전환을 한때의 불필요했던 유행이 아니라 '당연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소를 보며 "그때는 왜 그렇게 의심했을까"라고 생각하듯이 미래 세대가 오늘의 논쟁을 보며 "그때 더 빨리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이다. by 김원상(기후솔루션 언론 커뮤니케이션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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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와 에너지 전환]
당연한 것은 처음부터 당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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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와 생태계]
이번 여름, 러브버그와 살아가는 법
모기와 함께 곧 우리를 찾아올 곤충이자 최근 몇 년간 미디어 상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곤충이 있다. 바로 붉은등우단털파리(이하 러브버그)다. 짝짓기하며 암수가 꼬리를 맞대고 날아다니는 이 곤충이 한국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2015년이지만 본격적인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2022년부터다. 당시 러브버그는 서울 은평구, 마포구 등 서부 지역과 경기 고양시의 길거리를 빼곡하게 메우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지금은 경기 최북단인 동두천과 연천에서까지 유충이 발견되고 있다. 러브버그는 특유의 생김새와 엄청난 개체수로 혐오스럽다는 여론이 많지만, 동시에 우리 생태계의 일원이자 익충이기도 하다. 올여름과 앞으로 다가올 여름에 어떻게 러브버그와 함께살아갈 수 있을까? 러브버그가 논란이 된 5년 간 밝혀진 대발생의 원인과 논란, 러브버그와의 공생을 위한 방식을 살펴보자.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 © 국립생물자원관]러브버그는 왜 이렇게 많아진 걸까러브버그는 원래 중국 동남부, 일본 오키나와 등 따뜻한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던 곤충이다. 2022년 이후 우리나라, 특히 서울과 경기 지역 러브버그의 개체수가 급증한 원인으로는 기후변화가 꼽힌다. 우리의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월동하는 유충들의 생존율이 급증했고, 이상 고온은 유충의 성장을 가속시키며 대량의 성충을 발생시켰다. 아울러 이들의 천적인 새와 개구리, 거미 등의 서식지가 파괴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 한국의 도시는 러브버그가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열섬 현상으로 도심이 더욱 더워지고, 인공조명은 이들을 유인한다. 러브버그 자체의 특성도 한몫했다. 이들은 자동차 매연 냄새를 유충의 먹이인 부엽토 냄새로 착각하며, 밝은 색상을 좋아해 도심 건물이나 벽에 달라붙는다. 심지어 최근 서울대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러브버그가 도시에 살기 적합한 살충제 저항성과 열 스트레스 적응 유전자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방역이 러브버그의 대발생을 불러왔다는 역설적인 가설도 있다. 신승관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은평구에서 대벌레가 다수 발생했을 당시 이루어진 방역이 러브버그를 불러 온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벌레 방역 과정에서 다른 포식성 곤충이 함께 죽었고, 그 결과 러브버그는 비교적 느린 곤충임에도 다른 곤충에게 먹히지 않은 채 대량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익충 vs 해충, 러브버그를 둘러싼 논란러브버그 자체만 보면 이들은 분명 익충이다. 낙엽이나 썩은 나무 등 유기물을 분해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성충은 이슬이나 꽃꿀을 먹으며 꿀벌처럼 식물의 수분을 돕는다. 병원균을 옮기거나 물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실과 관계없이 러브버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정적인 이유는 이들이 수천 마리씩 몰려다니며 옷과 방충망에 들러붙고, 사체에서 악취가 나 불쾌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에 부딪혀 죽은 러브버그의 사체를 방치하면 체액이 산성으로 변해 차량을 부식시키기도 하고, 상가 외벽이나 입구에 붙어 영업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서울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가 러브버그를 해충으로 간주한다고 밝혔으며, 방제 민원이 업무를 마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서울시는 러브버그를 기존 해충은 아니더라도 '유행성 생활불쾌곤충'이라고 분류했다.[서울시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대한 조례안에 반대하는 환경단체 © 서울환경연합]환경단체는 이러한 분류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불쾌감을 유발하면 어떤 곤충이든 방제할 수 있다'라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며, 무분별한 곤충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종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러브버그만을 방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러브버그와의 여름 일주일을 잘 견디는 것이 환경적, 경제적으로도 낫다는 주장도 있다. 무분별한 살충제 살포는 생태계의 교란을 일으키고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만큼 박멸 대신 개체수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러브버그 방제가 시작되는 2026년국립산림과학원은 2026년 수도권의 러브버그 주요 발생 기간을 6월 15일부터 29일까지로 예측했으며, 6월 24일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것으로 보았다. 이에 대비해 지난 5월 7일 국회에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이 통과되었고, 이후 5월 21일에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2026년 러브버그 대발생 대응 대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살수 드론, 휴대용 흡충기, 광원 유인제와 포집기 확충 등 성충 방제 방안도 눈에 띄지만 가장 큰 변화는 따로 있다. 성충을 박멸하는 기존 방식을 넘어 유충 단계에서부터 개체수를 제어한다는 점이다. 이때 사용되는 유충 제거용 미생물 제제(Bacillus thuringiensis israelensis,이하 BTI)방식은 이전까지는 모기 유충 제거에 많이 사용되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러브버그와 근연종인 검털파리 유충을 대상으로 한 BTI 실내 검증시험에서 48시간 내 98%가 살충 되었으며 파리목 유충에만 작용하고 다른 동식물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불암산 미생물제제 살포 작업 현장 찾은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 © 기후에너지환경부]현장 실험도 이미 진행 중이다. 지난해 민원이 폭증했던 인천 계양산에는 물 1t에 방제제 2kg를 섞어 유충이 많이 사는 습한 토양 위주로 분사했고, 은평구 백련산에는 물 1t과 옥수수 낱알에 BTI를 접목해 만든 제제 10kg를 섞어 분사하고 추가 낱알을 뿌렸다. 노원구 수락산과 불암산에서도 관련 실험이 진행 중이다. 한편, 산림청 역시 실내 검증 실험에서 각각 90%와 60%의 살충 효과를 본 곤충 병원성 곰팡이류 방제제, 식물 추출물 방제제를 산에서 시험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위의 방제 방법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학계의 결론이 '안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따른 영향이 확인되니 모니터링하라'는 것으로 수렴한다며,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무분별한 화학적 살충제 방제가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때문에 진정한 친환경 방제가 가능한지, 생태계와 공존을 위한 노력에 대해 여전히 많은 연구와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위기가 계속되면 2070년에는 한반도 전체로 러브버그 서식지가 확산된다는 전망이 있다. 징그럽고 때로는 불쾌하게 여겨지는 러브버그와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도 생태계를 함께 이루며 공존해야 할지도 모른다. 더 많은 고민과 실험이 필요한 지금이다. by Editor L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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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와 지방선거]
6·3지방선거 단체장 임기 4년, 탄소 비용이 매년 오른다
2026년은 한국 기업의 탄소 비용 구조가 바뀌는 원년이다. 정부가 2025년 11월 11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제4차 계획기간(2026~2030년)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은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율을 현행 10.0%에서 2026년 15.0%, 2027년 20.0%, 2028년 30.0%, 2029년 40.0%, 2030년 50.0%로 단계적으로 상향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올해부터 EU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이하 CBAM)도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배출권 유상할당 단계 상향과 CBAM 인증서 의무 구매, 두 압박이 동시에 작동하는 민선 9기 지방정부 임기 동안 지역 재생에너지 인프라 수준이 그 지역 기업의 탄소 비용을 직접 결정하게 된다. 재생에너지 접근성이 높은 지역의 기업은 배출계수를 낮춰 두 규제 모두에서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인프라가 미비한 지역의 기업은 같은 제품을 생산하고도 더 높은 탄소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다.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어떤 단체장이 당선되는지에 따라 해당 지역 기업의 ESG 경쟁력 지형이 바뀌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확정 ©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 인스타그램]CBAM 본격 시행, 철강 밀집 지역의 과제CBAM은 EU가 2023년 5월 정식 발효한 탄소 관세 제도다. 2025년 12월까지를 전환 기간으로 두고 2026년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수입자는 연 1회, 매년 5월 31일까지 직전 해 수입 제품의 총량과 탄소배출량을 신고하고, 배출량만큼의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인증서 가격은 EU 배출권거래제 배출권 가격과 연동되며, 인증서를 미제출하면 탄소배출량 1톤당 최대 140유로의 과태료가 부과된다.한국의 CBAM 대응 비용 부담은 철강에 집중된다. 2022년 기준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대EU CBAM 대상 품목 수출에서 철강이 약 90%를 차지한다. 포스코·현대제철 등 주요 철강사와 연관 부품·소재 기업이 밀집한 전남, 경북, 충남 지역 입장에서 CBAM은 수출 경쟁력에 직결되는 지역 경제 문제다. 기업이 EU 수출 시 적용받는 CBAM 인증서 비용을 낮추려면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며, 이를 위해 그 지역의 재생에너지 접근성이 결정적 변수가 된다.이재명 정부는 RE100 산단 조성을 국정과제로 지정했다. 재정경제부가 2026년 1월 9일 발표한 '2026년도 경제성장전략'에는 RE100 산단 내 창업기업에 소득·법인세를 10년 간 100% 면제, 이후 5년 간 50% 추가 감면이라는 세제 지원과 함께 지방투자촉진보조금 한도와 국고 보조비율 상향, 인허가 간소화, 재생에너지 조달비용 인하 방안이 담겼다. 임기 내내 한 단계씩 올라갈 배출권 비용제4차 배출권 할당계획의 핵심은 단순한 비율 조정이 아니다. 2025년 10월 28일 공포된 배출권거래법 일부개정안은 탄소누출 우려업종과 지자체, 대중교통, 학교, 의료기관 등 특례업종에 무상할당을 유지하되, 단위 제품을 생산할 때 허용되는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값인 벤치마크(BM) 계수를 2030년까지 상위 20.0% 수준으로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출효율 기준 할당방식의 기준 자체가 매년 높아진다는 의미로, 같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더라도 이전보다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구조다.[국민성장펀드 1호 사업이자 RE100 산단 조성과 관계된 '신안우이 해상풍력 프로젝트' © 전라남도청]기업이 탄소 비용을 줄이는 실질적 방법은 두 가지다. 배출량 자체를 줄이거나, 재생에너지로 전환해 배출계수를 낮추는 것이다. 두 방법 모두 지방정부의 인프라 지원 없이는 속도를 내기 어렵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6년 예산에서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을 전년 대비 42.0% 증가한 1조 2,703억 원으로 편성하면서 RE100 산단, 영농형 태양광, 해상풍력 확대 등을 위한 금융지원사업에 역대 최대 규모인 6,480억 원을 배정한 것도 이 맥락이다. 이 예산의 집행 현장은 지역이고, 집행 속도는 지자체의 행정 역량에 달려 있다.재생에너지 인프라 격차가 지역 기업 경쟁력을 가른다RE100 산단 입지 선정 경쟁에서 현재 가장 앞서 있는 지역은 전남이다. 재생에너지 잠재량이 풍부하고 태양광, 해상풍력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앞서 있기 때문이다. 전남연구원이 2025년 10월 발간한 이슈리포트 '에너지 전환의 자산어보를 쓰다: 전남형 RE100 산업단지 구축을 위한 제언'은 "전남의 재생에너지 생산 역량이 일자리 창출, 정주 여건 개선, 첨단 기업 유치로 연결되도록 경제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며 에너지 공급-계통 안정화-기업 이행-제도·인센티브 지원-성과 관리의 전 주기 지원 체계를 RE100 산단의 핵심 조건으로 제시했다. 김영록 더불어민주당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후보가 영암 삼호·삼포지구 RE100 산단 지정과 200만 평 조성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것도 이 맥락이다.반면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미비한 지역의 기업은 RE100 달성 수단이 제한된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4년 기준 약 9.0%로 OECD 평균(31.0%)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정부가 2030년까지 100GW 설비를 목표로 잡고 있지만, 실제 확대 속도는 지역별로 차이가 크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관리하는 산업단지의 태양광 잠재량은 4.7GW에 달하지만, 실제 설치된 설비는 0.8GW(17.0%)에 불과하다. 재생에너지 접근성이 낮은 지역의 기업은 EU에 수출할 때 더 높은 CBAM 비용을 부담하고, 국내 배출권 시장에서도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구조다.[6.3지방선거 투표용지 예시 © 선거관리위원회]쟁점과 한계: 법적 기반 공백과 보궐선거 변수문제는 공약 의지와 실제 집행 사이의 간극이다. RE100 산단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단체장이 독자적으로 RE100 산단 입지를 확정하고 전력 공급 체계를 구축하기는 어렵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국감에서 "RE100 산단의 본격 조성 시점인 2026년 이전에 제도적·기술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으면 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같은 날 치러지는 14석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도 이 맥락에서 중요하다. RE100 산단 특별법 5건이 모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인 상황에서, 보궐선거 결과는 특별법 처리 일정과 입법 동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CBAM 인증서를 위한 탄소배출량 측정·보고·검증(MRV) 체계 구축도 기업이 독자적으로 담당해야 하지만, 지방정부가 중간지원 역할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중소·중견기업의 대응 속도가 달라진다. 단체장 선택과 국회 구성이 동시에 결정되는 6월 3일의 의미가 여기 있다.민선 9기 임기 4년은 발전 부문 유상할당이 10.0%에서 50.0%로 높아지고, CBAM 인증서 의무가 전면화되며, ESG 공시 법정 전환이 겹치는 구간이다. 세 제도가 동시에 강화되는 이 4년 간 지역 기업의 ESG 경쟁력은 그 지역 재생에너지 인프라와 단체장의 탄소중립 행정 역량에 더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지역의 기업은 RE100을 이행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에 잔류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지역의 기업은 탄소 비용이 누적되면서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우리가 6월 3일 선택하는 단체장은 4년간의 지역 탄소 정책만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사업하는 기업들의 ESG 비용 구조를 함께 결정한다. 전환의 방향은 분명하지만, 속도와 무게중심은 여전히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다.by Editor L보러가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