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 지나며 봄기운이 감돌고 있다. 곳곳에서 봄축제를 알리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산불 위험으로 재난 당국의 긴장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최근 10년 통계를 보면 전체 산불의 약 55.5%가 3~5월에 발생했다. 특히 3월이 약 25.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산불 피해 면적 또한 100ha(30만평)를 넘는 대형 산불의 비중이 늘어나며 피해 규모 역시 점차 커지는 추세다. 봄의 산불이 보내는 경고는 무엇일까. 산불은 왜 봄에 커지나 2025년 3월 21일, 경상남도 산청군 지리산국립공원 인근에서 시작된 불길이 무섭게 번졌다. 열흘 넘게 이어진 산불로 인해 대한민국 제1호 국립공원 지리산의 260ha 면적, 즉 축구장 360여 개에 달하는 규모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고, 진화 과정에서 4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주택과 사찰 등 건축물 57개소가 피해를 입었다. 연기가 광범위하게 퍼지며 인근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간접 피해도 발생했다.산불 피해와 함께 지역은 또 다른 재난을 겪었다. 산림이 훼손된 지 불과 몇 달 뒤인 2025년 7월,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며 산사태와 침수 피해가 잇따랐다. 불길에 숲을 잃은 산등성이는 빗물을 붙잡지 못했고, 토양은 그대로 흘러내렸다. 작년에 발생한 3월의 대형 산불은 단순한 지역 재난을 넘어,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준 사건이다.[경남 산청군 산불로 전소된 승용차 © 뉴스1]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산불의 원인 중 등산객, 성묘객 등 산에 들어간 사람이 실수로 불을 내어 산불을 일으키는 '입산자 실화'가 약 30%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어지는 원인도 쓰레기 소각, 논·밭두렁 소각 등으로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 원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봄철에는 겨우내 쌓인 낙엽이 마른 상태로 남아 있는데, 여기에 농번기를 앞둔 영농 활동과 등산객 증가가 겹치며 산불 위험이 더 커진다. 시작된 산불이 확산되는 데에는 '기상, 연료, 지형'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이 가운데 봄철 산불을 키우는 가장 큰 요인은 '기상 조건'이다. 봄철 한반도에는 남쪽에 고기압, 북쪽에 저기압이 자리 잡는 기압 배치가 자주 나타난다. 이 사이에서 형성된 편서풍이 백두대간을 넘으며 더욱 뜨겁고 건조해진다. 건조한 대기와 강한 바람이 만나면 작은 불씨도 순식간에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다.최근 산불의 주요 원인은 '기후 이상' 산불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부분 인간의 부주의에서 시작되지만 최근 대형 산불의 규모와 빈도는 단순히 사람의 실수라는 것 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 '블랙 서머(Black Summer)'로 불리는 호주 대형 산불은 2019년 가을부터 2020년 봄까지 이어지며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호주 뉴사우스웨인스주 경찰은 화재 방지 조항을 어긴 53명, 담배꽁초나 성냥을 버린 47명 등 총 183명을 법적 조치했다. 그러나 BBC 보도에 따르면, 방화로 발생한 화재는 전체의 약 1% 수준에 불과했다. 주요 원인은 극심한 가뭄에 의한 자연발화였다. 호주는 당시 1965년 이후 가장 낮은 강수량을 기록하며 최악의 장기 가뭄이 이어졌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섭씨 40도를 넘는 고온 현상도 발생했다. 이제 산불은 산림 관리 예방 차원을 벗어나 기후 변화와 직결된 재난이다. 여전히 산불로 인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본질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생태계의 구조와 다양성을 고려해야 할 산불 후 산림 복구산불은 진화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훼손된 숲을 복구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우리나라는 2000년 동해안 대형 산불 이후 산림 복구 과정에서 인공조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인공조림은 불에 탄 산지를 정리한 뒤 소나무와 같은 생장이 빠른 묘목을 심어 숲을 복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복원 방식의 실효성을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2019년 산불로 약 1,033ha의 피해를 입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지는 인공조림과 자연 복구 방식을 비교하기 위한 사례 연구 지역으로 활용됐다. 6년 후 현장 조사 결과, 자연 복구 지역에서는 참나무류가 4~5미터 높이까지 성장하며 숲이 빠르게 회복된 반면, 인공조림 지역에서는 초목을 심어 재배한 나무가 고사하거나 성장이 더딘 모습이 확인됐다.[인공조림과 자연조림 © KBS 창 444회 녹색카르텔]환경단체인 녹색연합 역시 2025년 경북 산불 피해 지역 조사에서 자연적인 식생 회복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처럼 산림 복구는 생태계의 구조와 다양성을 고려해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다. 그럼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송이 버섯 생산과 같은 경제적인 이유로 소나무 중심의 조림이 이어지고 있다. 단기적 이익을 좇다 숲의 회복을 간과하는 것은 아닐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산불은 더 이상 먼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대형산불 소식은 기후위기가 만들어낼 재앙의 시발점일지 모른다. 재난은 남반구의 낯선 타인의 이야기를 넘어 내 이웃, 내 가족, 그리고 나에게 다가올 수 있다.봄이 시작되는 3월이 설렘의 계절로 남을지, 재난의 기억으로 반복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산불은 변화하는 자연 환경을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우리가 맞이할 봄의 풍경은 우리가 숲을 대하는 방식과 기후 위기를 향한 대처에서 결정될 것이다.by Editor L[관련기사]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기후위기기후변화가 만든 신종 재난, '돌발가뭄'의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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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와 산불]
산불, 기후위기가 보낸 경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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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와 흙의 날]
3월 11일 흙의 날,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은 안녕한가
3월이 되면 땅이 깨어난다. 얼었던 흙이 녹고, 씨앗이 싹을 틔울 준비를 한다. 3월 11일 '흙의 날'은 흙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건강한 흙을 지켜가자는 취지로 2015년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날짜에도 의미가 담겼다. '3'은 하늘(天)·땅(地)·사람(人)의 3원과 농업·농촌·농민의 3농을 뜻하고, '11'은 흙을 의미하는 한자 토(土)를 풀면 십(十)과 일(一)이 되므로 3월 11일이 흙의 날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해마다 이 날이 돌아올 때마다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우리가 매일 딛고 사는 이 땅은, 지금 정말 괜찮은 걸까.흙=땅바닥(X), 관리대상(O)흙은 그냥 땅바닥이 아니다. 흙은 단순한 경작의 대상이 아니라 식량을 생산하고, 물을 저장하며 탄소를 흡수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생명의 토대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건강한 흙 한 줌에는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고, 이들이 유기물을 분해해 식물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흙이 오염되면 이 순환 고리가 끊기고, 그 영향은 결국 우리 식탁까지 이어진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조사에 따르면 세계 토양의 25%는 이미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산림 토양은 산성화가 조용히 진행중이다. 제주 농업기술원이 농경지를 분석한 결과, 최근 10년(2014~2023) 평균 토양 산도(pH, 작물 재배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로 토양 내 양분 유효도는 토양 산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5.8로 이전 10년(2004~2013) 평균 5.4보다 개선되었지만, 과수원 및 시설재배지는 여전히 평균 5.6으로 적정 범위(6~7)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화학비료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관행농업이 이어지는 한, 농경지 산성화 문제는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토양 산성화 개선을 위해 지속적인 양분과 토양 관리가 필요하다.[토양오염도 현황 그래프 © 기후부 토양측정망토양오염실태 조사결과]도시 한복판의 오염: 부지 정화 작업이 필요한 용산공원산과 밭 뿐만 아니라 도시의 흙도 오염되고 있다. 용산어린이정원이 들어선 부지는 주한미군이 수십 년간 주둔했던 곳으로, 기름 유출 사고와 중금속 오염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정원 내 장군숙소 단지·야구장·스포츠필드 등에서도 독성 물질이 검출된 바 있다. 2023년 한국환경공단 보고서에 따르면 캠프 레드클라우드·광주비행장·워리어베이스 등 6개 미군기지 주변 지역 약 5,000㎡에서도 토양 오염물질이 확인됐다. 근본적인 안전성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땅이 지금 시민들에게 열려있는 셈이다. 환경단체들은 반환 미군기지에 대한 철저한 부지 정화 작업부터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허가 신고와 시설물 철거, 폐기물 처리 등 준비 단계를 거쳐 정화 작업(오염 토양 굴착 및 되메움, 토양 정화, 지하수 정화), 사후 검증 절차까지 밟아야 한다는 입장이다.[용산어린이정원 조감도 © 국토교통부]우려를 넘어선 오염상태, 우리 토양 건강검진 결과정부는 매년 전국 토양 상태를 두 가지 방식으로 파악한다. 하나는 전국 1,000개 지점을 선정하여 고정된 지점에 대한 토양오염도를 조사하는 '토양측정망'이 있고, 다른 하나는 공장, 산업지역, 폐기물 매립지역 주변 등 토양오염 우려가 있는 지역을 선정해 집중 조사하는 '토양오염실태조사'다. 측정망이 일반 토지를 정기 점검하는 '건강검진'이라면, 실태조사는 이미 오염이 의심되는 곳을 들여다보는 '정밀검사'에 해당한다.2023년 토양측정망 운영 결과, 전국 1,000개 지점에 대하여 pH 포함 23개 항목을 분석했을 시, 모든 항목이 토양오염우려기준 이내로 조사됐다. 그러나 토양오염실태조사에서는 전국 2,457개 지점 중 48개 지점(2.0%)이 토양오염우려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라는 수치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조사 대상이 공장·산업단지·폐광산·폐기물 매립지 등 애초에 오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지역임을 감안해야 한다. 즉, 오염 위험이 높은 지역 중 대략 50곳 정도가 토양오염우려기준을 넘겼다는 뜻이다.오염물질의 종류도 다양하다. 토양오염물질에는 카드뮴·구리·비소, 중금속류와 벤젠·페놀류·벤조 등 총 23개 물질이 지정되어 관리 중이다. 토양오염물질은 동식물 생육과 사람의 건강에 지장을 줄 수 있으므로 단순히 '땅 속의 문제'로 끝나지 않으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흙의 날이 흘러가는 '기념일'로 끝나지 않으려면흙의 오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냄새도 없고, 당장 아프지도 않다. 그래서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고,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날 때는 이미 수십 년치 오염이 쌓인 후다. 3월 11일, 흙의 날을 맞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자.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이고 유기농 농산물을 선택하기. 그리고 내 지역의 토양오염 현황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것. 건강한 흙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 우리가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지켜진다.By Editor L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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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와 전쟁]
호르무즈 해협 봉쇄, ESG 공급망을 흔들다
'세계 에너지 동맥'으로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선박 통행을 차단했다는 소식이 3·1절 연휴가 채 끝나기 전에 우리에게도 알려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물류 통로가 아니다.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만큼, 중요한 에너지 수송 요충지이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성을 일깨워준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전 세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호르무즈 해협 하나로 인해 흔들리는 에너지 공급경제조사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르고, 세계 평균 물가 상승률이 0.6~0.7%포인트 상향될 것으로 예상했다. RE100을 선언한 글로벌 제조기업들도 재생에너지 전환 로드맵과 무관하게 원자재 및 부품 조달 전 단계에서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해왔다는 현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을 앞두고 탄소 배출 감축에 사활을 걸던 해운·항공업계는 유가 급등과 탄소 배출량 증가라는 이중 딜레마에 직면했다. 국내 항공사 대한항공은 인천~두바이 노선을 오는 3월 8일까지 전면 운항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 대부분이 아시아로 향할 정도로, 이 해협은 글로벌 제조 공급망의 에너지 기반 그 자체이다.[호르무즈해협(빨간색 원 위치) © gettysimage] 호르무즈 해협 우회 루트 중 하나로 언급되는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송유관은 수송 능력이 하루 원유 물동량의 1/7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체 경로로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 항로 활용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많은 선박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 경로로 택할 경우, 운송 거리가 수천 킬로미터 늘어나고 선박의 연료 소모량과 탄소 배출량 또한 대폭 증가한다. 국제사회가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공시 기준과 TCFD(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 프레임워크를 통해 탄소 배출 문제를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관리하게 만드는 흐름과 달리, 정작 에너지 공급 자체가 끊길 수 있다는 위험성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ESG 보고서가 놓친 한 줄, 에너지 공급망 불확실성한국은 이번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 한국은 원유의 70.7%, LNG(액화천연가스)의 20.4%를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이 물동량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한국무역협회(KITA)는 유가 10% 상승 시 수출 0.39% 감소, 수입 2.68% 증가, 기업 생산 원가 0.38% 증가 등의 연쇄 충격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차 등 RE100 가입 기업들은 자사 사업장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서둘렀지만, 정작 협력사의 에너지 공급망 불확실성은 통제 범위 밖에 있었다. 글로벌 ESG 평가기관들이 공급망 스코프3 배출량 관리를 강화하는 추세 속에 이번 사태는 에너지 공급이 지연될 때 발생할 결과를 수치로 확인시켜 준 사건이 됐다.[지난 2018년 12월 21일(현지시각) 유조선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모습 © 로이터]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이번 사태로 인해 ESG 경영의 맹점이 정면으로 드러났다. 기업들이 제출하는 ESG 보고서에는 기후 시나리오 분석이 포함되어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에너지 공급망 불확실성에 관한 시나리오는 대부분 빠져 있다. 전문가들은 ISSB S2 기준의 물리적 리스크 항목에 지정학 요인으로 인한 에너지 공급 경로의 물리적 위험성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업통상부 차관은 "우리가 도입하는 석유·가스 상당 비중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함을 감안하여 유가 및 해상 운송 리스크 확대 가능성을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이번 위기는 역설적이게도 재생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수입 경로 확대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사건이 되기도 했다. 이번 위기로 에너지 전환과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공급망 재편이라는 새로운 산업의 기회가 생겼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때마다 원유 가격이 치솟는, 에너지 공급 구조의 취약성이 반복되는 한 RE100과 탄소중립 선언은 반쪽짜리 ESG에 머물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기업과 정부가 에너지 공급망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ESG 전략의 핵심 변수로 다뤄야 할 시점이다.By Editor L보러가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