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혼돈의 주식시장에서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실적도, 성장성도 아닌 기업의 선행이 매수이유로 부상한 것이다. 올 7월, 한국거래소가 코스피 상장 유지 시가총액 요건을 200억 원에서 300억 원으로 높이자 기준선 아래에 놓인 '착한 기업'들을 지키려는 개인 투자자들의 자발적 응원매수가 잇따랐다. 소비자들이 기업의 선행에 대한 화답으로 주식을 구매하며 기업의 진정성이 시장을 움직이는 새로운 흐름이다. 오늘은 이렇게 시장의 관심과 애정을 확인한 기업들 한성기업, 모나미, 에넥스의 사례를 살펴보자.
선행이 개인 투자자들을 움직였다, 한성기업
수산물 가공식품 '크래미'를 생산하는 한성기업은 팬데믹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 수익성 악화 등이 겹치며 주가 하락을 면치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7월부터 상장 유지 시가총액 요건이 300억 원으로 높아지자 한성기업은 기준선 아래로 밀려났다. 하지만 한성기업이 올해로 25년째 6·25 참전용사를 위해 '영웅을 위한 음악회'를 후원해온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한성기업 감사의 말씀© 한성기업]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 위기에 처한 착한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주식매수 인증과 제품구매 인증이 잇따랐다. 그 결과 한성기업 주가는 7월 6일 시초가 4,680원에서 15일 종가 1만 4,520원으로 8거래일 만에 210% 뛰었고, 시가총액도 300억 원 안팎에서 901억 원으로 불어나며 상장폐지 위기를 벗어났다. 실적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은 주가 급등이라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는 한성기업을 매매거래정지 예고 종목으로 지정했고, 16일에는 하루 동안 매매가 멈췄다. 다만 응원은 주식에만 머물지 않았다. 온라인몰 주문이 몰리며 일부 제품이 품절되고 배송이 지연되는 상황도 나타났다.
국민볼펜 63년, 독도 후원이 시장을 움직이다
1963년 국내 최초의 볼펜 '153 볼펜'을 출시한 모나미는 2019년 일본제품 불매운동 당시 일본산 필기구 대체재로 주목받은 바 있다. 그런 모나미도 다시 한번 개인 투자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상장폐지 기준 강화로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모나미의 독도 후원 활동이 재조명됐고, 이에 공감한 개인 투자자들의 응원매수가 이어졌다. 모나미 주가는 7월 초 대비 중순 약 196% 상승했으며, 소비자들은 볼펜 등 대표 상품을 적극 구매하며 응원에 나섰다.

[판매 수익금 3%를 독도사랑운동본부에 기부하는 ‘153 독도 에디션’ © 모나미]
모나미는 2022년부터 폐플라스틱, 코코아 껍질 등을 활용해 볼펜을 제작하고 소비자들로부터 수거한 제품을 업사이클링 굿즈로 만드는 친환경 캠페인을 전개해왔다. 서울시와 손잡고 서울의 상징색인 '2026 서울색'을 적용한 프리미엄 라인을 개발하는 등 공공기관과의 협업도 이어가고 있다. 송재화 사장은 홈페이지에 자필 감사문을 올려 응원에 화답했고, 회사는 굿즈 사업과 공공기관 협업으로 수익 구조를 넓히는 중이다.
나눔의 역사가 시장의 신뢰를 얻다, 에넥스
한성기업처럼 오랜 기간 이어온 사회공헌 활동이 알려지며 주가가 급등한 또 다른 기업은 주방가구업체 에넥스(Enex)다. 1971년 설립된 에넥스는 아동보육시설에 학생용 가구를 기부하고, 저소득 취약계층에 가구를 지원하는 등 오랜 기간 소외된 곳에 나눔을 실천해왔다. 임직원 봉사단 '누리애'를 통해 직접 봉사활동에 나서는가 하면, 2025년에는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영동세계국악엑스포를 후원하는 등 문화예술 지원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에넥스 임직원 봉사단 '누리애' © 에넥스]
다른 기업들의 사례처럼 에넥스의 사회공헌 활동이 알려지며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몰렸고, 에넥스 주가 역시 나흘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에넥스는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받은 신뢰에 부응하기 위해 안주하지 않고 본업의 본질적인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투자자들의 성원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응원 이후에 남은 질문
기업의 사회공헌에 대한 관심이 주가상승으로 직결되는 과정은 눈여겨볼 만한 현상이다. 자신의 신념을 소비로 드러내는 행위에는 '가치소비', '미닝아웃(Meaning out)', '돈쭐' 등 표현이 다양하다. 이 신조어들은 결국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한다고 판단되는 곳에 자본이 흘러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들 기업은 가치소비의 증명을 주식시장에서 이끌어 냈다. 다만 시장의 평가와 평가기관의 평가가 같은 곳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다. 모나미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한국ESG기준원 ESG 종합등급 D를 받은 바 있다. 에넥스 역시 2025년 ESG 종합등급 D를 기록했고, 빌트인, 시스템가구 입찰 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58억4,400만 원의 과징금을 잠정적으로 부과받기도 했다.
응원의 열기만으로 주가를 지속 부양할 수는 없다. 실제 7월 21일 모나미는 하한가로 마감했고, 한성기업 주가도 약 15.4% 내렸다. 코스피 상장 유지 시가총액 기준은 2027년 1월 500억 원으로 다시 오를 예정이어서, 이번에 기준선을 넘어선 기업들도 머지않아 같은 시험을 치르게 된다.
선행의 역사가 기업신뢰를 불러왔다면, 그 신뢰를 지탱하며 기업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일은 이제 기업의 본업과 거버넌스 쪽에 놓여 있다. 소비자가 기억하는 신뢰의 증거와 ESG 등급표 사이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일이 이들 기업이 마주한 과제다.
by Editor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