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많은 관심 속이 지난 2월 28일 개봉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와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결합된 이 작품은 봉준호 감독이 미국 워너브라더스와 손을 잡고 1억 1,800만 달러(한화 약 1,277억 원)라는 블록버스터 규모의 자본을 투입한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들
복제인간은 SF 영화의 주요 소재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는 지구에 잠입한 복제인간 '레플리컨트'를 추적하는 내용인 ‘블레이드 러너’(1982년), 장기 제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들이 탈출을 감행하는 내용의 ‘아일랜드’(2005년), 달 기지에서 일하는 우주 비행사와 복제인간의 이야기인 ‘더 문’(2009년)등이 있다.
또 하나의 복제인간 영화인 '미키17'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원작 '미키 7'을 모티브로 차용했지만 많은 각색을 거친 작품이다. 주인공 미키는 사업 실패로 진 빚을 독촉하는 사채업자를 피해 ‘익스펜더블(소모품)’이라고 불리는 복제인간이 되길 자처한다. 그는 얼음행성 '니플하임'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정치인 '케네스 마샬'의 목표 달성을 위해 계속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며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 중 니플하임의 원주민이자, 우리 입장에서는 외계 생명체인 ‘크리퍼’가 살고 있던 크레바스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이 사고로 미키17이 살아있음에도 착오가 생겨 새로운 미키, 미키18이 생성되면서 벌어지는 갈등이 영화의 골자다.
복제인간이라는 유구한 소재로 봉준호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미키17에 앞선 영화들은 각 시대적 맥락 속에서 복제인간을 다양하게 탐구했다. 이들은 윤리적 딜레마와 사회적 계급 갈등,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 문제에 주로 천착해서 주제의식을 벼렸다. 미키17에도 이러한 맥락은 담겨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ESG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종교의 교주처럼 추앙받는 급진파 정치인 '케네스 마샬' ⓒWarnerbros.]
지구황폐화와 지속 가능성의 문제
17번이나 죽음을 겪고, 되살아나야만 했던 미키는 당초에 왜 지구를 왜 떠나야만 했을까? 영화는 행성 간 이주가 가능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인류는 지구에 환경 문제를 일으키고 못 살겠다며 새로운 정복지를 찾기 위해 4년이 넘는 여정을 시작한다. 미키가 우주선에 타기 전 공항 밖으로는 압도적인 모래 폭풍이 휘몰아쳤다. 공항 내부에는 종교지도자급 추앙을 받는 급진파 정치인의 사진이 휘장처럼 걸려있다. 심각한 기후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 불안한 대중의 심리를 자극하는 극단적 정치인의 모습은 (아직 지구 밖의 삶을 확보하지 못한) 2025년 현실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정치인 케네스 마샬의 비전은 복제인간인 익스펜터블에 대해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쓰레기에서 유기물을 추출해 인체를 만드는 방식으로 '사람'을 다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인간 경시와 같은 윤리적 문제는 아예 무시한 채 그 효용성을 높이 자찬한다. 같은 맥락의 행태는 새로운 정착지 '니플하임'에서도 이어진다. 개척민들을 태운 우주선은 외계 행성에 착륙하기 무섭게 지구에서처럼 기존의 생태계를 침해하고, 착취하려고 한다. 극심한 위기를 뒤로 하고 새로운 터전을 꾸리자고 나선 상황에도 지속가능한 자원관리, 생태계를 비롯한 환경문제는 가볍게 무시하는 탐욕스러운 빌런을 통해 감독이 비판하고자 하는 현실은 분명하다.
기술 발전과 윤리, 인간 소외의 비극
그렇다면 자원과 환경에 대한 고민 없이 생존과 번영을 목표한 인간 스스로는 행복했을까? 미키 17은 복제인간 생성과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할 정도의 고도의 과학적 성취로 이룬 세상이 오더라도 인간 본연의 인간성 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을 그려낸다.
미키가 죽을 때마다 기억을 유지한 채 복제되는 설정, 그 때마다 스크린에 비치는 미키의 눈빛과 표정은 인간의 윤리적 딜레마 그 자체다. 되살아날 것을 아는 미키에게도 죽음은 공포였다. 그러나 불합리한 구조에 갇혀버린 미키들은 경제와 기술논리가 앞선 현실에 기꺼이 순응한다. 효율을 위해 극도로 통제된 생활, 노동환경을 따르지 않으면 잔인하게 배제된다. 실상 지구에서도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성과를 내지 못해 탈락한 미키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다소 반항적인 18번째 미키가 용기를 내기 전까지 안전장치도 없이 죽음에 이르는 하루하루를 살았을 뿐. 그래봐야 미키18도 과학자의 일상적 업무 중 하나로 기계에서 프린트되어 바닥에 나뒹구는 프린트물, 목표를 위한 리소스 하나로 취급되는 존재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미키들에게 '죽음'은 어떤 느낌이냐고 묻는다. 마치 사람의 존엄성이 말살된 상황이 괜찮은지, 생각해 볼 여지가 없을지 관객에게 묻듯이.
물론 영화 속 과학자, 정치인, 철학자 모두가 생명경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기술로 얻게 될 경제적, 과학적 이득 앞에 완전한 폐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 뿐이다. 이런 상황에 '니플하임' 행성에 살고 있던 지적생명체 '크리퍼'를 사용 가치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인류가 지구에서 겪어 온 제국주의 식민지의 문화충돌을 떠올리게 하는 개척자들이 공존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빠른 인식 전환을 하며, 공동선을 찾아나선 것과 같은 모습도 인간의 한 측면이다.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부정한 세력을 몰아내고, 인간사회가 추구할 목표를 재정립하는 과정을 친절히 보여주는 장면은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돌아보게 한다.
[통제와 감시 속 생활하는 우주선 탑승자들 ⓒWarnerbros.]
가장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순간들 속에서도 결국 사랑하고 연대하는 이들이 승리하는 우화를 그린 '미키 17'.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답게 우리가 직면한 환경, 사회, 거버넌스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들을 너무 무겁지 않게 던진다. 미키 17은 우리가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현재의 우리는 어떤 미래를 위한 오늘을 매일 만들어 가고 있는가 탐구하기에 좋은 레퍼런스 같은 영화다.
by Editor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