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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인터뷰
[인터뷰] 선지 스님 “지속 가능한 공생적 ESG의 지혜, 붓다 경영”
2025.04.07

ESG 경영을 종교적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불교는 예전부터 '공생'이라는 개념을 중요시했다. 불교계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속가능한 세상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공생적 ESG 경영'을 전하는 <붓다 경영>의 저자 선지 스님을 만나 이 시대에 필요한 ESG 경영의 지혜를 들어보았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봄의 문턱에 <붓다 경영>의 저자이자 영천 죽림사 주지 선지 스님을 만나기 위해 마포로 향했다. ESG를 종교의 눈으로 바라본 이 책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방송 출연을 위해 상경한 스님을 방송국 인근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인터뷰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한 에디터는 카페 한 쪽에 펜을 잡고 몰두해 있는 스님을 멀리서 발견했다. 이른 방문이 방해가 될까 싶어 조심스럽게 자리를 피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다시 찾은 카페에서 만난 스님은 아이처럼 환한 미소로 ESG.ONL을 반겼다. 스님의 모습에서 청빈한 수도자의 정신이 느껴졌다. 깨끗하지만 앞섶이 헤진 누비저고리는 스님의 소박한 삶을 대변하는 듯해 도시에 찌들어 사는 속인의 마음에 새벽 범종 소리 같이 맑은 파문을 일으켰다. 스님은 어떻게 ESG와 만나 그 생각을 책으로 엮어낸 것일까.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지속가능한 공생적 ESG'를 설명한  <붓다 경영> ⓒESG.ONL]


불교와 ESG경영의 만남

선지 스님이 ESG를 불교적 관점에서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를 준비하면서부터다. 기존 불교학 논저는 학계 석학 스님들의 다양한 저서가 있다. 선지스님은 ‘굳이 나까지 그 분야를 전공해야 하나’싶었다. 또 하나 고민의 지점이 있었다. 스님은 붓다의 가르침을 현대사회에 적용해 쉽게 전달할 방안은 없을지 고심했다. 그렇게 스님은 ESG와 만났다. 처음에는 사찰 환경과 주변 생태계가 변화되는 실정을 조명하고자 했다.


ESG 경영의 주제인 환경, 사회, 투명한 지배구조 등을 강조하는 세계적 흐름이 정치, 사회, 문화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 사회적 흐름 속에 불교만 자유로울 수 있겠나.” 생각한 선지 스님은 이 책에 불교계가 적어도 ESG가 무엇인지 알고, 왜 실천해야 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을 담았다. 그는 찬란한 문화를 이어받은 지금의 승가가 미래세대와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터전을 보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느끼며 썼다. 



'보살행'의 현대적 실천 : 공생적 ESG경영

불교하면 많은 사람들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부터 떠올릴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시작하면 ESG와 불교의 연결고리는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무소유는 수도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일반 중생들까지 무소유를 실천하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부처님 근처에도 상공업자들은 많았다. 그들은 부처님께 가르침을 구하고자 찾아왔다. 선지 스님은 그때 부처님이 이들에게 한 말이 ‘가진 것 이상을 더 가지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부처님이 설법하신 연기법의 원리에 따라 세상을 보면 ‘모든 존재는 홀로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관계를 맺고 있다.’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공생적 ESG 경영의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공생적 ESG 경영은 이 단순하고도 확실한 진리에 기반해서 인류의 공존과 번영,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가지 더, 불교에는 '보살사상'이 있다. 보살사상은 모든 존재의 구원을 말하는 사상이다. 그 보살행, 즉 보살이 깨음을 얻기 위한 길의 핵심은 '사회 환원'이다. 불교는 사찰의 환경운동, 대 사회적 관계형성, 갈마법(승가의 의사결정방식)과 대중 공사(합리와 공정을 바탕으로 한 전원 참석의 의사결정)의 원칙으로 사찰 운영의 투명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보살 사상의 실천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공생적 ESG 경영과도 맞닿아 있다. 선지 스님은 “공생적 ESG 경영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며 이기주의를 배제하고, 자신의 것을 타인에게 나누어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공생적 ESG의 가치를 강조한 선지 스님 ⓒESGONL]

[공생적 ESG경영의 가치를 강조한 선지 스님 ⓒESG.ONL]




전통적 불교 거버넌스를 계승하는 '갈마 공동체'

선지 스님이 생각할 때 우리 불교계의 ESG는 어떤 모습일까. 선지 스님은 불교계의 환경적·내부적 요인을 고려할 때 위에서 아래로의 하향식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ESG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총무원장을 비롯한 중앙 종무기관장들이 공생적 ESG 경영을 어젠다로 논의를 개시해야 변화가 시작된다.


공신력을 갖춘 조계종단 차원에서의 '공생적 ESG 경영 선언문'을 발표할 경우 총무원을 비롯한 중앙종무기관에서 24개 교구본사 및 산하 사찰이 선언식을 봉행함으로써 그 파급력을 확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거버넌스 분야에서 전통적인 불교식 거버넌스 라고 할 수 있는 '갈마 공동체'를 보완하면 좋은 사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갈마 공동체란 수 천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불교계의 논의 방식이다. 승가 구성원들이 전원 참석하여 주제에 대한 토론을 하고, 전원 합의가 되면 논의가 완성된다. 불교계가 계승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토론방식으로 ESG 관련 후속 어젠다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공생적 ESG 경영 가치

불교는 자연환경과 사회적 책무 분야의 기반이 특히 든든하게 조성이 되어있다. 앞서 국제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의 파행 시 불교계가 사태 해결에 앞장섰던 사례도 있다. 선지 스님은 저서에서도 강조한 바 있지만 한국 불교가 기업, 공공기관과 협업해 국내외적 규모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종단적 차원에서 공생적 ESG 경영을 선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불교가 책임 있는 사회활동을 위해 기업과의 장기적인 공생적 ESG 경영 교류를 만들어 간다면 환경과 사회적 가치 실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불교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전국 각지의 아름다운 사찰들이 있다. 이 장소를 활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이어지고 있다. 템플스테이 명소로도 널리 알려진 '화엄사'는 ESG 환경경영 트렌드에 부합하는 좋은 사례이다.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협업해 ‘화엄사 굿즈’를 제작해 젊은이들에도 인기가 아주 높다. 특히 인기 많은 화엄사 굿즈는 산업 폐기물로 버려질 수 있는 '커피 마대'에 수작업 공정을 거쳐서 화엄사의 상징인 홍매화를 그려 넣은 가방이다. 선지 스님은 “이러한 참신한 친환경 기획 제품개발이 확산하지 못하고 그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은 아쉽다”며 불교계에 부는 이 같은 젊은 아이디어가 더 널리 공유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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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굿즈로 인기를 모은 '화엄사 홍매화 가방' ⓒ화엄사]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방법도 좋지만 선지 스님은 우리 불교계에서 가장 먼저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ESG 실천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바로 불필요하게 쓰는 에너지는 절약하고, 제로 웨이스트를 달성하는 것이다. 가장 작은 단위로 저녁에 사찰에서 불필요하게 쓰는 전등부터 끄고, 전기를 절약하고, 방문객 쓰레기통을 철거해서 쓰레기는 되가져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교는 아무래도 사찰이 자연 속에 있다 보니 기후변화, 사찰 수행 환경 보존, 생태환경 보호 등과 같은 환경 부분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고 말하며, 작은 행동이라도 사찰에서 스님들부터 시작하면 점점 사회로 확산할 것이라는 기대도 밝혔다. 



불교의 경계를 넘어 지구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선지 스님이 제안한 가장 하기 쉬우면서도 중요한 일은 ‘자기 잘못을 참회하고 멈추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물건을 너무 많이 쓰고 있다. 짧은 유행과 흐름을 따르기 위한 소비가 늘어나기만 한다. 선지 스님의 제안처럼 나부터 좀 줄이자는 마음을 한번 내어보자.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조직한 봉사활동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자. 내가 시작하는 봉사, 참여 정신은 반드시 주변으로 확산된다. 그런 활동이 이웃과 조직에 영향을 미치고, 너 넓은 세계로 확산되어 알려질 수 있다면 큰 변화를 만들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나 자신부터 시작해 보자!’  


by Editor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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