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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인터뷰
[인터뷰]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생태영성에 대하여"
2025.05.15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으로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열리며 종교계에 한 차례 큰 변화의 파고가 일었다. 생전 환경문제를 심각히 염려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따라 ‘기후는 변하는데 우리는 안 변하나요?’를 쓴 저자, 천주교 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인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를 만나 오늘날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생태영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지난 달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문'에는 '세상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하며, 오염과 파괴가 아닌 아름다움의 씨앗을 뿌리게 하소서’라는 내용이 있다. 이러한 정신과 궤를 함께하며 교회 공동체가 생태 전환을 이뤄내서 창조 질서를 보전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천주교 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이곳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에너지 전환, 탄소중립 관련 활동을 펼치고, 생태계 보전을 위한 교육자료 발간과 교육활동 등 다양한 생태환경 사목에 힘쓰고 있다. 
* 사목은 보통 천주교에서 사제가 신도를 이끄는 일을 의미한다.  


천주교 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는 1999년 사제 서품 이후 사회정의, 생태문제와 신앙의 접점을 찾아 고민하며 오늘날 천주교 내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중이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ESG에 대해 양기석 신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신앙과 환경운동을 융합한 '에코 신부님'

양기석 신부는 ‘에코 신부님’이라고 불린다. 그 이름에 걸맞게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건 기본, 평소 장을 볼 때도 항상 다회용기를 지참해서 구매한 물건을 담아오며, 포장이 덜 된 상품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일과 중에도 생태환경에 대해 고민하는 그는 2007년부터 교구 내 환경문제에 깊이 관여했다. 초기에는 환경문제를 사회정의, 비위 문제로 인식했다. 하지만 점차 생명과 생태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기 시작하면서 법이 정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인간생명에 위해가 갈 정도로 행해지는 환경 파괴 문제의 심각성까지 눈을 뜨게 되었다. 경제적 논리에 따른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그는 ‘행동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 노력은 우리 사회가 겪은 굵직한 토목사업 이슈와 연결됐다. 2008년에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 반대, 2010년에는 4대강 사업 반대 성명으로 이어진 그의 활동은 계속해서 신앙과 환경운동의 융합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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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영성을 따르는 생태환경위원회 ⓒ ESG.ONL/ESG오늘]



천주교 공동체와 천주교 다운 ESG 실천방향 

천주교 신앙에서 생태위기 대응은 종교적 구원과 직결된 문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제안한 천주교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이는 교황이 쓴 첫 번째 환경주제의 회칙이었다. '인간이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며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가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임을 지적하는 이 회칙은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생태신앙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이다. 생태문제의 실태와 천주교 차원에서의 접근법, 행동방식에 대해서도 밝히며 기후정의 운동을 촉구하는 내용이 상세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 교회는 이에 따라 모든 신자와 선한 이웃이 생태 회개를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열고, '공존과 돌봄, 배려의 가치'를 실천하여 기후정의를 이루고자 한다고 양 신부는 말했다. 특히 그는 과도한 성장 우선주의를 멀리하고 물질 숭배를 금기시 하는 교리를 따라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인간 삶과 구원의 길이 위협받는다고 강조한다. 양 신부는 이러한 이유로 ESG 정신과 맞닿아 있는 환경, 사회, 윤리적 책임을 다 하기 위해 기후위기에도 신앙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중앙집권 조직이라는 외부인식과 달리 실상, 각 본당 신부가 펼치는 사목방침과 운영에 신자들의 의식과 실천력이  좌우된다. 양 신부는 이미 에너지 전환과 친환경 소비 등 구체적인 실천지침이 있음에도 신자들이 이를 자신의 일로 인식하지 못하는 점이 과제라고 지적했다. 교구장 주교들이 명확한 ESG 관련 메시지를 전달하면 각 본당 신자들은 이를 당연한 책임으로 받아들여 교회와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찬미받으소서'회칙에 근거한 신앙적 행동 지침도 한국 상황에 적용할 수 있도록 명확히 제시하면 교회 내에서 실질적인 ESG 문화확산과 변화도 기대할 수 있을 거라고 양신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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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인 양기석 신부  ⓒ ESG.ONL/ESG오늘]



유엔과 정부목표보다 앞선 천주교 수원교구의 2040 탄소중립 로드맵 

양기석 신부가 속한 천주교 수원교구는 2030년까지 교구 내 222개 성당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해 에너지 자립을 이루고자 한다. 2040년까지는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국내 종교계 최초로 선언했다. 이 계획은 2021년 교황청의 탄소중립 선언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의 기후위기 경고를 반영한 것으로 유엔과 정부 목표보다 10년을 앞당긴 목표다.

 

실제 천주교 수원교구는 각 성당 지붕과 유휴 부지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고, 에너지협동조합 설립과 정부·지자체 협력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에너지 기후정책 연구소에 의뢰해서 수원교구의 탄소중립 계획이 실현 가능할 지 알아보는 보고서도 만들었다. 신축, 리모델링 성당은 제로 에너지 건축 인증을 적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신자들과 '일상생활 속 46가지 실천 항목'을 통한 탄소감축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달성 전망이 아주 밝지는 않다. 실행이 시작된 2022년부터 현재까지 약 2천 킬로와트(Kw) 정도의 목표를 달성해 목표치 2만 킬로와트에는 미치지 못한 실정이다.


아쉬운 현실이지만 멈출 수는 없다. 태양광 발전에 대한 인식제고와 참여 확대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한다. 양 신부는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에서 태양광 발전소 설치는 정치, 이념 갈등과 지역사회의 성향에 따라 종종 반대에 부딪힌다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신자들조차도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어 태양광 설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그는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이념적 갈등을 넘어 지역주민과의 소통 강화, 편의성과 배려를 고려한 접근,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친환경 습관을 자연스럽게 정착시키는 문화 조성도 갈등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행동 하기 전보다는 지지하는 분들이 늘었다고 웃으며 말하는 양 신부는 수원교구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실천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선도할 것이라는 다짐을 밝혔다.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종교적 연대

양기석 신부는 천주교를 넘어 타 종교와의 연대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환경운동을 함께 해온 종교인 동료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 양 신부는 종교계에서 최초로 에너지 전환에 대해 눈을 뜬 원불교단의 사례를 소개했다. 원불교는 100개 교당이 100개의 ‘햇빛 발전소’를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열심히 활동했고, 양 신부는 이 모습을 보며 2008년부터 원불교와 함께해 왔다. 불교도 여러 시도 끝에 ‘비로자나 자연 에너지 협동조합’으로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주도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예도 있다. 2002년 새만금 개발 계획 반대로부터 시작된 한국 5대 종단(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의 협력은 ‘종교환경회의’라는 연대체로 발전해 24년 간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 환경정의 실현 등 다양한 목적의 활동을 함께해 왔다. 특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독일의 탈원전 현장을 함께 방문하기도 하며 에너지 전환에 대한 관심과 협력이 강화된 각 종단은 신앙에 기반한 환경운동과 생태신앙 확산에 힘쓰고 있다. 양 신부는 천주교의 탄소중립 목표가 다시 타 종교와의 협업을 촉진했고, 한국 사회의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종교계 공동 행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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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기석 신부의 저서 ‘기후는 변하는데 왜 우리는 안 변하나요?’ ⓒ ESG.ONL/ESG오늘]



“환경 생태 문제가 참 많은데, 실제 생활 습관을 바꿔야죠”   

우리의 일상 생활로 많은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 그래서 ‘지금 시대는 가장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별해야 할 때’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양기석 신부는 말했다. ‘내가 지금 사려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인지, 없으면 안 되는 것인지.’ 양 신부는 한번 쯤 생각해보길 권하며 소비를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일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생각도 덧붙였다.


생태신앙의 뜻을 세우고 환경운동에 참여하며 신앙을 통한 환경위기 해결책을 모색한 양 신부. 교구의 탄소중립 로드맵 추진과 더불어 폭 넓은 타종교와 연대로 ESG의 가치를 실현하며, 그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생태영성의 길을 열고 있다  

양 신부를 만나고 나서 명징하게 정리되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기후가 변하고 있으니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걸어온, 조용하지만 확실한 행동의 발자취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종교가 있든 없든, 지금 이 순간 성찰을 통해 ‘하나의 행동’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by Editor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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