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국정과제 81번의 제목은 사회연대경제 성장 촉진이다.
국정운영 계획서에는 이 의제 달성을 위한 네 가지 실천 목록이 적시되어 있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제정, 민관협력 지원체계 구축, 사회연대금융 활성화, 사회연대조직 성장 지원이 그것이다. '사람 중심의 경제'를 지향하는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가 사회연대경제로 바뀌고, 이 경제 영역 활성화가 국정과제에 등재되면서 사회적 금융 혹은 사회연대금융이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 금융이란 사회를 위하는 금융, 사회 구성원을 돕는 금융이라는 뜻이다. 현실 금융이 사회에 봉사하지 않고 경제적 이익만 탐하니 인간과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금융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뜻과 의지가 담겨 있다.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실을 사회화하는 은행, 비가 오면 우산을 거둬들이고 비가 그치고서야 우산을 내주는 금융이 아니라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 손을 내미는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금융은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하는 공공재임에도 자산 크기와 신용 점수에 따라 접근성의 차이가 크며, 일정 기준 이하는 아예 금융을 이용할 기회가 박탈된다. 금융 시장에서 배제된 이들은 비싼 이자를 물고 돈을 빌리거나 약탈적 대출을 일삼는 사채업자들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이 '결핍'을 메우는 것,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 돈보다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사회적 금융의 역할이다.
한국적 맥락에서 사회적 금융이 요구되는 영역은 크게 네 가지가 존재한다. 무담보 소액대출 등을 통해 소외계층을 돕는 포용금융, 공제 등 참여자 간 협동과 연대를 바탕으로 작동되는 호혜금융, 소셜벤처, 사회연대경제 기업 등 사회·환경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을 지원하는 임팩트금융, 낙후된 지역·지방 경제를 살리기 위한 지역금융이 그것이다. 현실에서 네 영역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따로 움직이기도 한다.
사회적금융 생태계가 살아 움직이려면 수요자와 공급자를 잇는 중개기관이 있어야 한다. 중개기관이 필요한 이유는 기존 금융 통로로는 자금 공급과 순환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은 담보나 보증이 없으면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손실 위험을 안을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은 담보나 보증을 요구하지 않으며, 위험을 수용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한다. 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곳은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뿐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금융 활성화 정책'이 실패한 원인이 이 지점에 있다. 서둘러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조급증으로 중개기관을 육성하지 않았고, 대신 시중은행, 정책 금융기관 등 기존 전달체계를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사회연대경제 조직 대다수는 신용 점수 부족 등의 이유로 배제되기 일쑤였고, 소수에게만 혜택이 주어졌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수요자 중심의 공급이 이루어질수 있는 새로운 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사회적금융이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공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사회투자 도매기금을 구축하고, 공익법인의 자금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공익목적 투자제도를 활성화하고, 정책 금융기관의 자금 일부를 할당해 사회연대경제 조직을 지원하고, 금융회사의 돈이 지역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지역재투자 평가제도를 정비하는 일에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금융은 수단이고, 도구이며, 인간이 만든 피조물이다. 금융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낡은 경로 의존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사회적 상상력이다. 환경 오염의 주범인 인간은 돈에 눈이 멀어 땅과 바다를 생명이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들고 있고, 사회적 불평등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이런 비극을 창출하는 '배후' 어딘가에 금융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익보다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금융의 출현은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질서와는 '다른' 방식의 금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포용과 호혜, 임팩트와 지역금융을 실행하는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모든 백조는 흰색일 거라는 세상의 통념을 깨고 등장한 이 검은 백조들은 희망의 전령사들이다. 정부가 할 일은 이들이 날아오르도록 돕는 것이다. 돈의 흐름을 바꾸면 돈이 선하게 쓰이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사회적금융연구원 / 문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