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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인터뷰
[기고] 이익을 넘어 가치로 : 사회연대은행의 포용금융
2025.11.03

정부 국정과제에 '사회연대경제 성장 촉진'이 포함된 것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돈의 논리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절박한 인식을 반영한다. 핵심 과제인 '사회연대금융 활성화'는 금융이 본래의 공공재적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담고 있다. 사회적 금융은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를 넘어, 인간과 공동체에 봉사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일으켜 세우려는 '사람 중심의 경제'를 지향한다.


사회연대금융이 한국적 맥락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영역 중 하나가 바로 '포용금융(Inclusive Finance)'이다. 현대 금융 시장은 자산의 크기와 신용 점수에 따라 접근성이 극명하게 나뉘며, 일정 기준 이하의 시민은 아예 금융 이용기회를 박탈당한다. '비 올 때 우산을 걷어가는 금융 시스템' 아래에서, 이들은 높은 이자의 기회비용을 지불하거나 약탈적 대출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포용금융은 이런 결핍을 메우고, 금융 시장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금융 접근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불평등 심화의 고리를 끊는 데 그 사회적 가치가 있다. 이 특별하고도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수요자 중심의 금융 전달 체계를 구축하는 (사)함께만드는세상(사회연대은행)과 같은 사회연대금융 중개기관이다. 담보나 보증을 요구하며 손실 위험을 회피하는 기존 금융기관과 달리, 사회연대금융 성격의 중개기관은 위험을 수용하고 그 해결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특별한' 역할을 맡는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포용금융은 이미 제도권 금융에서 낮은 신용도와 많은 부채로 힘들어진 상황에 다시 금융을 공급하는 것이 '부담'을 지워 주는 것이 아니라, '회복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바라봐야 한다.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생을 마감한 가슴 아픈 사연의 이면에는 대부분 금융 위기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현금 흐름이 단절된 위기 속에서, 적시에 호혜적 조건으로 공급되는 금융은 개인과 가정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는 구명줄이 된다.


비록 기존 부채 등의 문제가 있더라도, 개인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방식으로 금융을 공급함으로써 당사자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상환된 돈은 다시 또 다른 위기 상황의 사람들에게 사용되어 선순환 구조를 만들며, 하나의 생산자로서 참여하는 경험을 통해 '내가 갚은 돈이 누군가의 다음 기회가 되는' 연대와 책임의 감각 또한 함께 길러진다.


포용금융의 사회적 가치 창출은 금융 불평등이 심화된 미국에서도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비영리 금융기관 '미션애셋펀드(Mission Asset Fund, MAF)'는 금융 주류 시스템 진입이 어려운 저소득층과 이민자 가정을 돕는 대표적 사례다. 멕시코의 공동기금 방식인 '딴다(tanda)'에서 착안한 '렌딩서클 프로그램(Lending Circles)'을 운영하며, 참여자들이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무이자 소액 대출을 돌려가며 상환 기록을 신용평가기관에 보고해 신용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이는 신용이 없어 금융 접근이 불가능했던 이들에게 제도권 진입의 길을 열어주며, 포용금융이 '신용 형성'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사)함께만드는세상(사회연대은행)은 신뢰와 연대를 통해 금융이 회복의 힘이 될 수 있다는 철학으로 '프로젝트 다시, 봄'을 통해 카카오뱅크와 협력하여 제도권 대출에서 배제된 청년들의 고금리 부채를 1% 금리로 전환하고, 신용관리와 재무 인식 개선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함께온기금'을 조성해 금융위기에 처한 자립준비청년, 저소득·저신용 창업자 등에게 신용점수가 아닌 '의지와 가능성'에 기반한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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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미션애셋펀드와 사회연대은행의 포용금융 모델은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신뢰와 관계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회복력을 만들어낸다. 이는 개인의 금융 자립과 존엄성 회복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비용 절감과 더 촘촘한 금융 안전망 구축이라는 공공적 가치를 실현한다.

모든 것을 숫자로만 판단하는 시대에 금융에서 사람의 이야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금융은 목적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수단이자 도구이지만, 공급자가 선별적으로 판매하는 '상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러나 배제된 곳들을 호혜적 방식으로 채우고, 그 속에서 사람에 대한 신뢰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사회연대금융은 각박해지고 격차가 심화된 우리 사회에 '협동과 연대'의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다.


by (사)함께만드는세상(사회연대은행) 안준상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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