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브라질 아마존 하구의 인구 150만 도시 벨렝에서 열린 COP30(2025년 11월 10~21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현장은 기후 위기의 긴박함과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기후 협상은 언제나 경제적 이해관계와 정치외교적 셈법이 복잡하게 얽히며 교착 상태에 빠지거나 답보하기 일쑤다. 이번 총회 역시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를 명문화하는 데 다시 한번 실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이 지지부진한 협상의 틈바구니에서 목격한 것은 전혀 다른 가능성이었다. 바로 정치가 풀지 못한 매듭을 푸는 '문화의 힘'이다.

[cop30 현장 © 기후솔루션 언론 커뮤니케이션 담당 김원상]
이번 총회에서 기후솔루션은 글로벌 단체들과 연대하여 화석연료 투자 중단을 촉구하는 액션을 펼쳤다. 자칫 딱딱하고 전형적일 수 있었던 이 캠페인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캐릭터 코스프레였다. 글로벌 콘텐츠의 힘 덕분인지 참가자들과 취재진의 반응은 뜨거웠다. AP를 비롯한 여러 외신이 이를 집중 보도했고, 이는 곧 기후 이슈가 대중적인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전달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실제 논의의 장으로도 이어져 K팝과 기후 대응을 주제로 한 세션이 마련되기도 했다. 현장을 찾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축사를 통해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문화적 접근이 정책적 관심으로 연결되는 자연스러운 접점이 만들어졌다.
현지에서 만난 한 기자의 경험담은 더욱 극적이다. 일반인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아마존 산림에서 원주민을 취재할 당시, 평소 외부인에게 배타적이었던 이들은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 한마디에 태도를 바꿨다. 그들은 넷플릭스로 시청한 한국 드라마를 언급하고 배우의 이름을 부르며 호의를 베풀었다. 벨렝 시내에서 열린 거리 행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시민들은 환대했고, 함께 사진을 찍거나 소셜미디어 계정을 공유하자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단체 사진마다 등장한 '손가락 하트'는 이념과 언어를 넘어선 유쾌한 연대의 상징이었다.

[cop30 현장 © 기후솔루션 언론 커뮤니케이션 담당 김원상]
이러한 경험은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평범한 한국인에게 태평양 도서 국가들의 공동체는 지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거리가 먼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이 마련한 '모아나관'은 달랐다. 유명 애니메이션 덕분에 친숙해진 이름에 이끌려 들어간 그곳에서, 그들이 마주한 기후 위기의 실상과 메시지를 한참 동안 경청했다. 문화가 아니었다면 스쳐 지나갔을 타자의 고통이 문화라는 촉매제를 통해 나의 문제로 치환된 순간이었다. 대부분 회사나 국가를 대표하며 딱딱한 언어와 비즈니스 복장이 가득했던 COP30 현장에서, 긴장을 풀고 반가운 마음이 들게 했던 유일한 접점은 이처럼 비공식적인 문화적 교류였다.
오랜 축구 팬으로서 브라질은 오직 축구로만 연결된 먼 나라였다. 그 이전까지는 아마존 생태계라는 대자연을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을 뿐, 그 안의 원주민 커뮤니티와 그들의 문화를 인지할 경험이 전혀 없었다. 평생 한 번이라도 가볼 수 있을지 불분명했던 나라를 기후 총회라는 낯선 무대 덕분에 마주할 수 있었고, 양국은 문화를 통해 서로의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다. 기후 대응이라는 거대한 국제적 과제에서 기술적 해결책이나 정책적 합의만큼 중요한 것은 결국 '연결하고자 하는 의지'다. 아무리 정교한 정책이라도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동력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cop30 현장 © 기후솔루션 언론 커뮤니케이션 담당 김원상]
기후 협상의 한 축으로서 문화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노래를 즐기며 서로의 존재를 인지한다. 이 부드러운 연결고리가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더 많은 문화 아티스트와 인플루언서들이 기후라는 가치 아래 모여야 하는 이유다. 교착 상태에 빠진 기후 정치를 구원할 힘은 어쩌면 차가운 협상 테이블 위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향유하는 뜨거운 문화의 현장에 있을지도 모른다.
by 김원상(기후솔루션 언론 커뮤니케이션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