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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인터뷰
[ESG와 고립] 연말의 불빛이 닿지 않는 사람들, ‘고립된 삶’을 다시 보다
2025.12.22

연말은 모임과 약속이 많은 시기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거리에는 추위를 잊게 할 만큼 화려한 빛과 색이 가득하다. 구세군 자선냄비와 연탄 봉사 역시 코끝이 시려질 즈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분명 연말은 풍성하고 너그러운 기간이지만, 그 온기가 닿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이들이 있다.

 

그동안 연말의 ‘소외된 이웃’은 주로 독거 노인으로 대표돼 왔다. 물론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다만 최근 청년과 중장년층을 아우르는 새로운 형태의 고립 집단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고립·은둔 청년 등 이들을 부르는 용어 역시 세분화되고 있다. 구체적 특징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경제활동과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됐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표현인 ‘은둔형 외톨이’ 혹은 ‘히키코모리’는 오랜 기간 집에 머물며 사회와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피하는 사람 혹은 그 상태를 의미하는 일본어로, 2000년대 초반 본격적인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집단 따돌림(이지메), 등교거부 현상과 거품경제로 인한 청년실업, 장기 불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한국 역시 1997년의 IMF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고용 불안과 개인주의의 확산 속에서 취업 실패나 직장 부적응으로 인해 사회적 고립에 빠지는 이들이 증가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히키코모리 고령화로 심각해진 일본의 '8050문제' ⓒ NHK 스페셜]



은둔과 고립은 종종 개인의 의지나 능력 부족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통계를 살펴보면, 개인이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적 요인이 드러난다. 2025년 1월, 고용서비스 플랫폼 ‘고용24’에서 집계된 구인배수는 0.28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구직자 10명당 일자리가 2개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빈 일자리 마저 감소했다. 지난해 7월 18만5000개에 달하던 빈 일자리는 올해 7월 15만8000개로 1년 사이 2만7000개 감소했다. 그간 인기 없던 일자리 마저 귀해진 상황이다. 줄어든 일자리만큼 구직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은 늘어나고, 일부는 조용히 사회 시스템에서 이탈한다.

 

취업 실패가 고립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군대와 직장 내 부적응이나 괴롭힘, 사업 실패, 인간관계 실패, 질병, 삶에 대한 회의감 등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삶을 포기하고 은거한다. 과거에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들도 사기나 배신, 사내 정치, 뜻밖의 해고를 겪으며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고립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위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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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립은둔청년 성과공유회 이미지 ⓒ 내손안에서울]



문제는 개인의 고립이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장기간 ‘쉬었음’ 상태에 놓인 청년은 중장년 캥거루족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청년의 자립 지연은 부모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키워 노후 빈곤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서울연구원의 '서울시민 생애 과정 변화와 빈곤 위험' 보고서에 따르면, 35세 시점에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이 1971~1975년생 22.8%에서 1981~1986년생 41.1%로 크게 높아졌다. 일본은 이미 80대 부모가 50대 자녀와 동거하며 경제적 지원을 이어가는 ‘8050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았다.

 

그럼에도 체계적인 관리와 대응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고립 당사자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에너지조차 잃기 때문에 ‘찾아가는 지원’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중장년, 청년, 1인가구 등 연령과 상황을 가리지 않고 고립 당사자를 폭넓게 발굴해 유형별로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방식의 지원이 필요하다.

 

오상빈 광주 청소년상담센터장은 "은둔형 외톨이들은 장애와 비장애, 상담과 복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데 단일한 기준을 적용하면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며 "은둔형 외톨이를 '청년'으로 규정할 경우 40~50대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는 빠지게 되고, 단순히 '정신병'으로 취급하면 많은 사람이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는 상담과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상당수 사업이 청년층에 국한돼 있어 40~50대 중장년 고립층은 여전히 제도적 공백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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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거리 풍경 ⓒ전주시청 페이스북]



청년재단과 서울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이 공동으로 진행한 ‘청년고립 유형화’ 연구는 유형별 맞춤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연구진은 은둔 기간만으로 문제를 재단하기보다, 개인의 삶의 방식과 고립의 원인에 따라 접근해야 실질적인 회복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청년 기지개센터’는 청년의 사회적 고립척도를 3개 유형으로 분류해 진단하고, 50여개 맞춤형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 12월에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바느질 클럽이나 반려식물 프로그램부터 기초역량강화교육, 연말 공연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온라인 콘텐츠를 활용한 접근인데, 확산력 있는 온라인 채널에서 고립·은둔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청년재단과 은둔형 외톨이 지원 기관 ‘안무서운회사’가 함께 제작한 유튜브 콘텐츠 ‘안무서운 시리즈’는 고립·은둔 경험이 있는 한국 청년들이 일본의 오랜 사회 문제인 히키코모리 이슈를 직접 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네이버 웹툰 ‘아르마딜로’ 역시 은둔형 외톨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외부 활동이 극단적으로 제한된 이들에게 온라인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소통 창구다. 온라인 콘텐츠의 댓글창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위로하는 장이 되고 있다.

 

고립·은둔 문제는 사회적 지지체계가 얼마나 세밀하게 작동하는지 가늠하는 지표다. 수명은 늘어나지만 일자리는 줄어든다. 이제 사회 전체가 삶의 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화려한 불빛 뒤편에서 조용히 고립된 사람들을 돌아보는 일, 그것이 지금 이 시기에 우리가 연말을 보내는 또 하나의 방식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by Editor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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