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청년 문제는 주로 두 이미지로 설명된다. 집 안에 머물며 사회와 단절된 청년, 또는 자립에 실패한 성인.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훨씬 다채로운 현실이 존재한다. '탈가정 청년'도 그중 하나다. 가정 내 폭력, 경제적 착취, 통제와 학대가 반복되어 생존 전략으로 탈가정을 선택한 청년들이 있다.
생존을 위한 강제 자립, 가족 중심 제도의 사각지대
누군가는 이렇게 묻는다. "그 상황이 힘들었던 건 알겠지만, 지금은 성인 아닌가요. 집을 나온 뒤 경제적으로 안정되기까지의 어려움은 독립한 청년 대부분이 겪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이 말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탈가정 청년에게 자립은 돌봄과 관계, 안전이 제거된 상태에서 시작되는 강제된 독립에 가깝다는 점이다.
원가족과 단절한 청년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지만, 주거는 계속해서 불안정하다. 아플 때 의지할 사람도 거의 없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자신의 상황을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이어지며 관계의 피로가 누적된다.

[탈가정 청년 이미지 © Unsplash]
그렇다면 개인의 선택을 넘어 제도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했을 탈가정 청년들은 왜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그 이유는 행정의 기본 전제가 여전히 가족에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부모와 단절했지만 행정적으로는 여전히 부모와 묶여 있는 상태라는 모순 속에서 탈가정 청년은 제도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정부가 운영하는 각종 청년 지원 제도 역시 부모의 소득이나 동의를 기준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아, 이들은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탈가정 이후 이들의 삶은 원가족의 보편적인 보호와 지지가 끊기고, 국가의 제도적 보호 또한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 채로 이어진다. 경제적, 정서적 책임과 위험을 개인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자립 실패가 아닌 돌봄의 단절
최근에는 개인의 정서적 안정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탈가정은 성인이 된 개인이 가족과의 거리를 조정하는 선택지로 설명되기도 한다. 하지만 탈가정 청년은 순수하게 이러한 맥락에만 놓기는 어렵다. 이들은 성인이 된 이후 주체적으로 관계를 재정의한 것이 아니라, 안전과 생존의 이유로 본의아니게 가족을 떠나야만 했던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경험이 개인 선택의 문제로 축소되면 사회가 부담해야 할 구조적 책임은 흐려지고 당사자 개인이 자신의 사정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증명해야 하는 부담만이 남는다. 이는 원래 가족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를 점차 성인 개인의 심리적 선택의 영역으로 설명하려는 담론이 확산된 결과이기도 하다.
주거와 돌봄을 우선시하는 해외 사례
미국과 캐나다는 탈가정 청년을 'unaccompanied youth'로 명명하며 그 상태 자체를 추가적 보호와 제도적 지원이 시작되는 기준으로 삼는다. 캐나다의 'Housing First for Youth(HF4Y)'와 미국의 '원스톱(One-stop) 청년 센터'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구체적 정책 실험으로 이어진 사례다.
HF4Y는 탈가정 청년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오늘 밤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나요?" 주거가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어떤 자립도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모델은 주거를 회복의 출발점으로 먼저 제공한 뒤, 그다음 단계에서 정신 건강, 교육, 고용, 사회적 회복을 통합적으로 지원한다. 자격 증명을 요구하기에 앞서 자립이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을 먼저 마련해주는 방식이다.

[캐나다 Housing First for Youth(HF4Y) © Homelessness learning hub]
미국의 원스톱 청년 센터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탈가정 청년이 겪는 주거, 의료, 법률, 상담, 고용의 문제는 서로 얽혀 있지만, 기존 제도에서는 각각 다른 창구를 찾아다녀야 했다. 원스톱 센터는 이러한 구조 자체를 문제로 보고 관련 지원이 한 공간에서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청년이 자신의 피해와 결핍을 반복해서 설명하지 않도록 제도가 뒷받침하는 것이다.
청년 자립 이전의 조건들
해외의 두 사례는 자립을 둘러싼 기존의 인식을 뒤집는다. 그동안 한국의 청년 정책에서 자립은 주로 고용과 소득을 중심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이들 정책은 근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 즉 주거의 안정과 관계의 회복, 정서적 안정이 먼저 마련되지 않으면 어떤 일자리도 지속되기 어렵다는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러한 사례들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청년들의 자립을 위해 고용은 중요한 요건이지만, 그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주거의 불안정, 관계의 단절, 정서 회복의 부재 속에서 고용은 쉽게 중단된다. 그렇기에 그들이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서울시가 '탈가정 청년 지원 조례'를 발의하며 제도 바깥에 있던 이들을 정책 언어로 호명하기 시작했다. 가족과의 단절을 개인의 선택이 아닌 추가적 보호가 필요한 상태로 인식하겠다는 신호다. 다만 조례는 출발점일 뿐, 주거와 돌봄을 어디까지 공적 책임으로 설계할지는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박강산(더불어 민주당 비례대표) 서울시 탈가정 청년 지원 조례안 발의 © 서울시의회]
탈가정 청년은 한국 사회가 청년의 자립을 어떻게 정의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전제를 당연시해 왔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보호와 지지가 사라지고 개인의 책임만이 남겨진 자리에서는 그 어떤 삶도 지속되기 어렵다. 탈가정 청년이라는 존재가 던지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할 것인지는 앞으로 청년 정책이 나아갈 방향을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by Editor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