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 서울 강남구에 근무하는 공무원 박모 씨는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차 번호판 끝자리가 '3'인 그는 이날부터 시행된 공공부문 차량 5부제로 지하철 출근을 해야 했다. 퇴근길에는 집 앞 편의점에서 라면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가격표를 보니 두 달 전보다 400원이 올랐다. '아, 석유!'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라면 포장재도, 그걸 담은 비닐봉지도, 라면을 배달하는 물류트럭까지.. 생각의 끝은 그 곳을 향한다. 호르무즈 해협, 세계 에너지 동맥의 심장부다.
세계의 에너지 동맥이 막히다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에 해당하는 하루 2천만 배럴이 통과하는 핵심 요충지,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운송량이 급감했다. 미국-이란 전쟁의 여파로 이란이 해협 통제를 선언하며 시작된 위기는, 지정학적 긴장이 에너지 공급망에 얼마나 즉각적이고 전방위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지를 냉혹하게 보여주고 있다. 해협봉쇄가 통보된 시점부터 원유 가격은 지속적으로 올랐고, 이로 인한 물류 병목 현상으로 시장은 경색되었다. 원유가격은 단숨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한국해양진흥공사의 분석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통과 물동량은 평시 대비 약 80% 감소했고, 대형 원유 운반선의 중동-중국 노선 운임은 약 3.3배 상승했다고 한다. 우회 항로를 택하면 어떨까. 호르무즈 해협 폐쇄 시 우회 항로 이용에 따른 추가 운송 비용은 기존 해상운임 대비 최소 50~80%까지 급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의 지갑으로 전가될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 © gettyimages]
일상의 변화: 물가 상승과 차량 5부제 강화
이 위기가 한국 소비자의 생활에 닿는 방식은 생각보다 촘촘하고 빠르다. 가장 먼저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주유소 가격표다. 경유와 휘발유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물류·배달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택배비와 배달비 인상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다. 항공업계 역시 항공유 상승으로 영업비용이 늘게 되었고, 해운업계는 유조선 운임비용 추가 상승에 시달리고 있다. 식탁 물가도 심상치 않다. 연료 및 비료 비용 상승으로 커피, 초콜릿, 육류, 수산물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비수기 농산물과 수입 수산물은 특히 운송비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을 전망이다.

[카타르 LNG © 카타르에너지]
정부는 중동 상황 관련 에너지 수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3월 25일부터 공공부문에 대한 차량 5부제를 강화했다. 중동 사태 장기화로 에너지 수급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18일부터 원유 관련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관심' 단계에서 '주의' 단계로 격상했다. 재계도 빠르게 동참하고 있다. 삼성은 국내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차량 10부제를 시행하고, SK그룹은 차량 5부제를 적용하면서 점심시간과 퇴근 이후 전등 소등 의무화, 냉방 26도 이상·난방 18도 이하의 온도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도 화상회의 전환, 점심시간 일괄 소등, 대중교통 이용 권장 등 생활 밀착형 절감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배달 용기부터 의료 도구까지 일상에서 석유화학 제품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며 국민의 협조를 촉구했다.

[에너지절약 관련 12가지 국민행동_기후에너지환경부 © gettyimages]
IEA의 10계명, 그리고 재택근무라는 변수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중동 전쟁으로 장기적인 석유 공급 차질이 우려된다며 수요 억제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재택근무 확대와 대중교통 이용, 자가용 요일제, 카풀 확대 등 10가지 권고안을 제시했다. 10계명 중에서도 재택근무는 가장 강력한 수요 감축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IEA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 종사자들이 주 3일 추가로 재택근무 시 자동차의 석유 소비를 2~6% 줄일 수 있으며, 개인 운전자 기준으로는 평균 약 20%까지 줄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재택근무 확대는 단순한 에너지 절약 이상의 파장을 품고 있다.
차량 5부제가 '운행을 제한'하는 규제라면, 재택근무는 출근 자체를 없애 연료 소비를 원천 차단한다. 동시에 그것이 가져오는 일상의 변화는 훨씬 복합적이다. 재택 전환이 늘어나면 도심 식당과 카페의 점심 수요가 줄고, 대중교통 혼잡은 완화되지만 베이커리·편의점 등 오피스 상권은 타격을 입는다. 통근 연료는 줄지만 가정 내 냉난방·전력 사용은 늘어나는 이른바 '에너지 이전'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위기경보가 '경계' 단계로 격상되면 재택근무 권고도 가능할지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CJ는 경보 단계 격상 시 재택근무제, 거점 오피스, 유연근무제 등 근무 방식 전반을 조정해 에너지 사용을 줄인다는 계획을 이미 수립해 두었다. 위기 대응 정책이 기업과 정부 간에 속도차를 보이는 대목이다.
석유 위기가 던지는 진짜 질문
에너지 위기가 올 때마다 한국은 수요 감축, 비축유 확대, 절약 캠페인의 사이클이 반복되는데 이 패턴 자체가 에너지 정책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한국은 중동에서 수입하는 원유의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어 해협 봉쇄 시 제조업 공급망에 치명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같은 처방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여전히 같은 위기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비축유 확대와 공급선 다변화가 당장의 방파제라면, 재생에너지 확충과 에너지 효율 기반의 산업·생활 구조 개편은 반복되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방벽이다.
호르무즈가 막히니 우리 일상도 함께 흔들린다. 이 흔들림이 다음 위기에도 또 반복되지 않으려면, 지금의 불편함을 '일시적 희생'이 아닌 '구조적 전환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by Editor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