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시리즈에서 이처럼 음울한 출발점을 내세운 게임은 드물었다. 게이머가 마주할 세계는 시들어 있고, 인간은 사라졌으며 남은 것은 폐허와 황무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게임은 포켓몬 시리즈의 수작으로 평가받게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바로 지난 3월 5일 출시된 '포켓몬 포코피아(Pokémon Pokopia)'게임 시리즈 이야기다. 포켓몬 포코피아는 포켓몬 프랜차이즈 최초의 슬로우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출시 4일 만에 전 세계 220만 장, 일본에서만 100만 장이 팔렸다. 게임 리뷰 사이트 메타크리틱(Metacritic)에서 89점의 호평을 받았고, 주요 유통처에서 품절이 이어지며 거꾸로 콘솔 기기인 닌텐도 스위치 2탄의 역주행 모멘텀을 끌어올리기까지 했다.
생태계 위기가 게임의 배경이 되다
기본 설정도 지금껏 익숙했던 포켓몬 게임의 문법과는 꽤 다르다. 게임 사용자는 인간의 모습을 한 메타몽이 되어, 한때 포켓몬과 인간이 함께 살았지만 이제는 시들고 버려진 땅을 다시 복구해야 한다. 재료를 모아 아이템을 만들고 집과 서식지를 조성하면서 포켓몬들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간다. 게임 안의 시간은 현실 시간과 연동되고, 날씨와 밤낮 변화도 그대로 반영된다. 기존 포켓몬시리즈 게임처럼 더 강한 포켓몬을 잡거나 포획한 포켓몬을 육성하는 게임이 아니다. 단지 인간과 포켓몬들이 살 만한 세계를 재건하는 게임이다.
앞선 포켓몬 시리즈 세계관에서 또가스와 코산호 같은 일부 포켓몬 사례를 활용하여 이미 기후변화와 생태계 위협을 암시해왔다. 대기오염 물질을 내뿜는 산업화의 흔적과 백화된 산호초는 어린이와 대중이 사랑하는 IP 안에 생태 위기의 그림자가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줬다. 포켓몬 포코피아는 바로 그 암시를 한 단계 더 나아가 보여줬다. 이번에는 기후와 생태계 문제가 배경 장식에 그치지 않고, 게임 실행의 규칙 자체가 됐다. 게이머는 대화, 일기, 편지, 책을 통해 세계가 어떻게 황폐화되었는지 깨달아 나간다. 시든 세계를 복구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포켓몬 포코피아 © 포켓몬 포코피아 공식 웹사이트]
게임이 가르쳐주는 공생의 문법
이 게임이 흥미로운 이유는 핵심 루프 자체가 환경 관리의 메타포로 읽히기 때문이다. 황폐해진 마을을 복구하고, 포켓몬이 살기 좋은 서식지를 만들수록 더 많은 포켓몬이 찾아온다. 게임 안에는 '환경 레벨'이라는 지표가 있어서, 마을을 정비하고 자연을 회복시키고 포켓몬이 편히 지낼 수 있게 할수록 수치가 올라간다. 그러면 새로운 재료가 제공되고 시설도 열린다. 쉽게 말해 게임에서 더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수록 세계가 다시 살아나고, 게이머에게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다.
이러한 점에서 포켓몬 포코피아는 기존 포켓몬 게임과는 다른 윤리를 보여준다. 과거의 포켓몬이 포획과 배틀, 그리고 상대보다 강해지는 성장 논리에 가까웠다면, 포켓몬 포코피아는 포켓몬이 함께 살아가기 좋은 터전을 만드는 걸 중점으로 둔다. 예컨대 메타몽은 포켓몬의 기술을 빌려 싸우는 대신, 풀을 자라게 하고 물을 대고 지형을 정리한다. 이상해씨는 메마른 땅에 초목을 더하고, 꼬부기는 초목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렇듯 포켓몬이 가진 '기술'이 파괴나 경쟁의 수단이 아니라 관리와 복구를 위한 도구로 역할을 수행한다.
또 하나 인상적인 대목은 다양성을 다루는 방식이다. 포켓몬들은 각자 원하는 환경이 다르다. 어떤 포켓몬은 건조한 곳을, 어떤 포켓몬은 물가를, 어떤 포켓몬은 더 푸르고 습한 환경을 선호한다. 그래서 게임 사용자는 획일적인 마을을 만드는 대신, 서로 다른 조건이 공존할 수 있는 다층적 서식지를 설계해야 한다. 모든 환경을 똑같이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자의 조건 속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조율한다. 이 지점에서 포켓몬 포코피아는 생태계의 회복뿐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다양성의 가치를 아주 부드러운 문법으로 그려낸다.

[ 포켓몬 포코피아 게임 장면 © Nintendo 공식 유튜브 채널 ]
공존을 체득하는 방식을 전하다
물론 한계는 분명하다. 포켓몬 포코피아는 기후위기를 직접 고발하는 게임은 아니다. 공식 소개와 핵심 시스템이 강조하는 것은 '탄소, 화석연료, 에너지 전환, 책임 주체'와 같은 현실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복구, 정원 가꾸기, 서식지 조성, 쾌적도' 같은 회복의 언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원인과 권력, 자본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기보다는 "환경을 가꾸면 생명이 돌아온다"는 직관을 반복해서 학습시키는 힐링형 재건 서사에 가깝다. 하지만 그 점 덕분에 더 넓은 대중에게 닿을 수 있다. 정면 비판 대신 감응과 체험으로 설득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포켓몬 포코피아의 성취는 여기에 있다. 환경 문제를 무겁고 어렵게 전달하기보다, "좋은 환경을 만들면 더 많은 생명이 돌아오고, 더 다양한 존재가 함께 살 수 있다. 공동체도 더 풍요로워진다"는 감각을 게임을 통해 익히게 만든다. 포켓몬을 잡아두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기술을 공격 수단이 아니라 복구의 도구로, 성장을 경쟁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행동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기후와 환경을 다루는 콘텐츠가 반드시 재난의 공포나 죄책감만을 동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렇게 가장 우울한 세계관에서 다정한 회복이라는 상상력이 나올 수도 있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붕괴를 게이미피케이션에 무리 없이 접목한 사례라는 점에서 교육적 잠재력도 크다. 포켓몬 포코피아는 그 점에서 포켓몬의 변신이자, 기후·환경 커뮤니케이션의 영리한 진화라고 할 만하다.
by 김원상(기후솔루션 언론 커뮤니케이션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