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6,000 시대. 한국 증시가 국제 투자자 커뮤니티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시선은 재무적 성과보다 이사회를 향했다. 4월 14일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한국·일본·영국·미국 등 각국의 연사들이 반복해서 던진 질문은 단 하나였다. 기업지배구조가 제 역할을 하고 있냐는 것이다.
국제기업지배구조네트워크(International Corporate Governance Network, 이하 ICGN)와 한국거래소가 공동 주최한 'ICGN 코리아 컨퍼런스 2026'은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 변화를 글로벌 맥락 위에 놓고 진단하는 자리였다. 컨퍼런스에 모인 전문가들은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과와 스튜어드십 코드의 진화, 투자자들이 기업에 요구하는 기준 을 주요하게 논의했다.

[ICGN 코리아 컨퍼런스 2026 공식 포스터 © 한국거래소]
숫자가 말하는 밸류업의 성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한국 증권 시장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이었다. 평가의 중심에는 2024년 7월 시작된 밸류업 프로그램이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상장기업이 현황 진단, 목표 설정, 계획 수립, 이행과 소통 과정을 자발적으로 밟으며 주주가치를 높이고, 그 노력을 투자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라 불리는 국내 기업들의 저평가를 해소하고, 시장의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지난 2월 상법 개정도 이루어졌다. 이러한 흐름 속 밸류업 프로그램이 시장에 자리를 잡으며 결과가 숫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해 코스피는 6,000을 돌파했고, 주주환원이 커지는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는 전년 대비 약 2배 증가했으며, 2024년 9월 출범한 코리아 밸류업 인덱스 공시 기업의 시가총액 비중은 전체 시장의 약 80%에 이른다.
숫자만큼 주목할 변화는 기업의 의사결정 기준 변화다. 이전에는 주주총회에서 투자자들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이후에만 이사진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이사진이 먼저 연락해 투자자의 시각을 묻는 방식의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사후 대응에서 사전 개선으로, 기업의 거버넌스 방향성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제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질적 변화
다만 컨퍼런스에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지적됐다. 소수 주주가 원하는 후보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 있도록 설계된 집중투표제를 무력화하기 위해 이사 임기를 분산 조정하거나 이사회 정원 자체를 줄여 소수주주의 후보 추천권을 사실상 차단하는 사례가 거론됐다. 자기주식 처분 시 '경영상 목적'이라는 모호한 근거를 정관에 신설하는 기업 관행도 도마에 올랐다. 주주환원을 강화하려는 상법 개정 취지와 정반대 방향이라는 지적이었다.
독립이사의 실질적 독립성 역시 풀리지 않은 숙제다. 이사 선임이 통상 인적 네트워크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형식은 갖추고 있어도 실제로 경영진을 견제하기 어렵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조차 그 간극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 깊다. 제도가 빠르게 바뀌는 만큼 취지를 살리는 방안을 채우는 속도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 컨퍼런스의 세션들의 공통된 결론이었다.

[ICGN 코리아 컨퍼런스 2026 중 '한국 기업지배구조 개혁: 오늘의 변화와 내일의 기회' 주제 패널 토론 © ESG.ONL]
증시와 공진화하는 투자자의 기준
한국 증시도 전에 없던 성장세를 보이는 지금, 우리 증시에 주목하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도 함께 달라지고 있다. 핵심은 스튜어드십 코드다. 기관투자자가 단순한 주주를 넘어 투자 기업의 경영에 책임 있게 관여하도록 하는 이 민간 자율 규범은 큰 변화 없이 유지 중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와 한국ESG기준원 등 관계부처, 기관이 '스튜어드십 코드 내실화 방안'을 발표하며 큰 변화의 시동을 걸었다. 구체적으로 내실화 방안은 올해부터 자산운용사, 연기금부터 우선 점검을 추진하고, 기관투자자 등 이행점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단계적 발전방향을 담고 있다.
이는 한국만의 움직임이 아니다. 영국은 스튜어드십 코드 서명 기관이 매년 실제 활동을 보고하는 구조를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은 기업지배구조 코드 개정 협의안을 이번 컨퍼런스 기간 중 공개하며 개혁을 가속화하고 있다. 홍콩, 싱가포트도 공시 선진화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실제로 확인하고자 하는 것
ICGN 참여국들이 이와 같은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한편,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이하 SEC)가 주주 제안 심사에서 손을 떼는 방향으로의 태도변화가 논란이 됐다. 기존 기업의 주주 제안을 주총 안건에서 제외하려 할 때 SEC의 사전 검토를 거쳐야 했지만 2025년부터 SEC는 안건 제외 요청에 대해 실질적 판단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기업이 스스로 안건을 제외할 수 있는 재량이 커진 셈으로 ESG 측면에서 주주 제안이 무력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럽연합의 상황은 이와 다르다. 작년 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옴니버스 패키지는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CSRD) 등 지속가능성 규제 적용범위를 축소하고, 공시의무를 완화한다는 우려를 샀다. 기업 대상 규제가 과도하다는 산업계의 반발을 수용한 결과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ESG 공시를 강화하려는 흐름과 약화시키려는 흐름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ICGN 코리아 컨퍼런스 2026 에서 발표 중인 젠 시슨(Jen Sisson) ICGN CEO © ESG.ONL]
투자자들이 기업에 요구하는 기준은 그럼에도 구체화되고 있다. 기업이 ESG 위원회를 운영하는지 여부 보다 위원회의 논의가 실제 자본 배분 결정으로 이어지는지, 임원 보수와 성과 평가에 ESG 목표가 반영되어 있는지, 그 결과가 이사회 전체에 보고되고 있는지가 글로벌 투자자들이 실제로 들여다보는 지점이다. 한국거래소가 신설한 영문 ESG 포털은 이제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기업을 판단하는 첫 번째 창구로 기능한다.
올해부터 모든 코스피 상장사가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5월부터는 자산 2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임원 보수를 기업 성과와 비교 공시해야 한다. 각국 공시기준도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 ISSB)가 제시한 글로벌 기준에 점차 맞춰지는 추세다. 이번 컨퍼런스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국 자본시장은 이미 글로벌 투자자들의 레이더 망 안에 들어있고, 그들이 보는 기준은 숫자를 넘어 구조와 실제로 이동하고 있다.
Editor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