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이란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 중심 에너지 체계를 태양광·풍력·수소 등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장기적 구조 이동을 뜻한다. 요즘 주목받는 에너지 전환 기업 GE버노바(GE Vernova)는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 이하 GE)의 에너지 부문이 2024년 독립 분사하면서 설립된 회사다. 가스 발전 장비, 풍력 터빈, 원자력·수력 발전 설비, 전기화 소프트웨어까지 발전과 송배전 전 영역에 걸쳐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지난 4월 22일, 뉴욕증시에서 GE버노바의 주가가 하루 만에 13% 넘게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같은 날 발표된 2026년 1분기 실적은 월가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으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한 93억 달러를 기록했다. GE버노바의 성장은 에너지 산업의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전력 소비가 가스 발전과 전력망 장비 수주를 동시에 끌어올리면서 탈탄소 전환 과정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들이 투자자와 산업계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전력 변환 및 송전 기술의 핵심 기지인 GE 버노바 영국 사업장 전경 © GE버노바 공식홈페이지]
AI가 만든 에너지 전환의 역설
에너지 전환 기업은 신뢰할 수 있는 전력 공급을 유지하면서 탄소배출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일, 즉 전환 과정 자체를 비즈니스의 중심에 놓는다. 세계 에너지 전환 시장은 2024년 기준 3조 800억 달러 규모로 평가되며, 연평균 10.3%의 성장률로 2030년에는 5조 5,6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 시장이 지금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AI의 역설' 때문이다.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상황에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이 날씨에 의존하는 에너지원은 24시간 수백 메가와트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렵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에 전력을 공급하는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목표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발전 용량을 동시에 확보하고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AI 혁명이 재생에너지 전환 수요와 함께 에너지 발전 인프라의 수요도 동시에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이중 효과를 만들어낸 배경이다.
[전력의 95%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아마존 데이터센터 © 아마존 뉴스(Amazon News)공식 홈페이지]
GE버노바와 지멘스, 에너지 전환 기업의 동반 질주
에너지 전환 기업들이 실제로 담당하는 영역은 크게 세 축으로 나뉜다. 발전, 전력망, 그리고 재생에너지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영역이 AI 수요 급증이라는 하나의 동력 아래 동시에 팽창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뜨거운 곳은 가스발전 장비 시장이다. GE버노바는 2024년 GE에서 독립 분사한 이후 가스 발전 장비 시장의 최대 수혜자로 부상했다. 2026년 1분기 파워 부문에서만 100억 달러의 수주를 달성했다. 이 중 상당 부분은 데이터센터 전력 확보를 위한 계약이다.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지멘스 에너지(Siemens Energy) 역시 올 2월 실적 발표에서 순이익이 전년 대비 약 세 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두 기업의 동반 수혜는 현재 가스발전 장비 시장이 이른바 '판매자 시장'으로 전환됐음을 보여 준다. 설비 수주 이후 실제 납품까지 수년이 걸리는 장기 계약 구조가 일반화되고 있으며, 가격 책정 주도권도 공급자 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장기 목표는 재생에너지
전력망 인프라도 또 하나의 핵심 영역이다. GE버노바는 지난 분기 변압기 전문업체 프로렉 GE(Prolec GE)의 잔여지분 50%를 전량 인수해 전력망 공급 역량을 강화했다. 1분기 전력화 부문에서만 데이터센터 지원 목적의 설비 수주가 24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지난해 전체 실적을 한 분기 만에 돌파한 수치다. 지멘스 에너지도 전력망 사업부를 핵심 성장 동력으로 내세우며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재생에너지 부문은 사뭇 다르다. GE버노바의 풍력부문은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23% 하락했고, 손실 규모도 약 3억 8,200만 달러로 확대됐다. GE버노바는 트럼프 행정부의 해상풍력 규제 변화가 사업 환경을 어렵게 하고 있지만 사업이행에는 문제가 없음을 밝힌 바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것이 장기 목표이지만, 단기적으로는 가스발전과 전력망이 성장을 이끄는 구조다.
[GE 버노바 풍력터빈 © GE버노바 공식홈페이지]
GE버노바는 2027년까지 수주 잔고 2,0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는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긴 목표다. 그러나 변수도 있다. GE버노바는 2026년 글로벌 관세 충격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2억 5,000만에서 3억 5,000만 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과 공급망 불확실성은 장비 부품 조달과 가격 책정 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물음은 기후목표와의 정합성이다. 에너지 전환 기업들이 공언하는 역할은 탄소를 줄여 가는 임시 연결다리 역할이지, 화석연료 사용을 유지하는 역할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의 수익은 가스 발전 장비에 집중돼 있고, 재생에너지 부문은 아직 손실을 내고 있다. 전환의 방향은 분명하지만, 속도와 무게 중심은 여전히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다.
by Editor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