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먼 미래인 2050년이 아니라 1968년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1968년으로 돌아간다면, 그해 어느 신문 가판대 앞에 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둘러싼 논쟁 기사를 직접 읽어볼 것이다.
명절에 우리는 고속도로에서 교통 체증을 걱정하고, 휴게소 음식을 이야기하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도착 시간을 확인한다. 지금의 우리에게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는 미래가 아닌 일상이다.
숫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래 가치
하지만 1968년의 사람들에게 경부고속도로는 일상이 아닌 모험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앞서 자동차도 많지 않은 나라에서 왜 고속도로를 지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등장했다. 국가 재정은 넉넉하지 않았고, 도로 포장률도 낮았다. 당시 건설 반대자들은 한국의 경제 상황과 자동차 보급률을 고려할 때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시급하지 않고, 재정적으로도 현명한 결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967년 한국의 차량 대수는 약 6만 대, 1969년 도로 포장률은 8%에 그치니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1968년 월간지 <세대> 1월호에서 당시 신민당 소속 박영록 국회의원은 "장차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는 하나 너무 조급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국민 부담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김대환 교수도 제2차 경제개발계획에 없던 고속도로 사업을 새로 밀고 나가면, 국민 경제에 부담이 늘어나 경제개발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 공사 현장 © 국가기록원 ]
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의견을 비웃기는 어렵다. 실제로 가난한 나라에서 수백억 원짜리 도로를 짓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론자들이 모두 미래를 보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다만, 그 우려에는 아직 오지 않은 현실이 담기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의 가치는 착공 당시, 도로 위를 오가는 자동차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길은 자동차가 많아서 지어진 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동차와 물류 시대를 불러낸 길이기도 하다. 경부고속도로가 기존 철도·국도와 중복을 피하면서 수도권, 영남공업지역, 인천항과 부산항을 연결하는 대동맥 역할과 경제개발의 중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모한 도전이 남긴 질문
이번에는 타임머신을 조금 더 움직여 1970년 포항으로 가보자. 그곳에서도 비슷한 말들이 오갔다. 철광석도 부족하고, 자본도 부족하고, 기술도 부족한 나라가 대규모 제철소를 짓겠다고 했다. 지금의 우리는 포항제철(POSCO)을 한국 제조업의 기초 체력으로 여긴다. 그러나 당시에는 지금 포항제철의 성공이 당연한 성공이 아니었다. 당시 제철소 건설을 향한 비판은 더 노골적이었다.
과거 논쟁을 보면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제철소 건설을 "경제성이 없고 자원 낭비며, 전시용"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에서는 차라리 철강을 수입해 사용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국회에서는 원료도 없고 쓸 곳도 없는 제철공장을 왜 짓느냐며 문제 제기를 했고, "차라리 쌀 부족으로 인한 식량난부터 해결하자"는 식의 비판까지 등장했다.

[포항제철소 제 3고로 본체공사 © 포항역사박물관]
당시의 계산으로는 경부고속도로도, 포항제철소도 전망이 불안했다. 비용은 선명했고 편익은 흐릿했다. 지금 당장 투자가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지만, 그 돈이 훗날 어떤 산업 지도를 만들지는 누구도 정확히 계산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의 공통된 운명일지 모른다.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은 거의 없다. 경부고속도로도 처음에는 낭비처럼 보였고, 포항제철소도 처음에는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질문이 바뀌었다. "왜 지었느냐"가 아니라 "없었다면 지금 어땠을까"가 된 것이다.
전환의 비용과 지연의 비용, 무엇이 더 비싼가
물론 이 이야기를 과거 개발도상국가의 성공담만으로만 여겨서는 곤란하다.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소의 역사에는 지역 불균형, 민주적 토론의 부족, 노동의 희생이라는 그림자도 함께 있다. 그렇기에 오늘 한국 사회가 마주한 '에너지 전환'이라는 화두를 다룰 때, 그 시대 방식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다만, 그럼에도 과거의 사례들은 현재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미래의 인프라는 지금의 경제성만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한가. 재생에너지를 더 늘려야 하는가, 송전망을 얼마나 빠르게 지어야 하는가, 전력시장과 요금 체계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질문은 많고 답은 쉽지 않다. "경제성이 없다", "국민 부담만 늘어난다", "전기요금이 오른다", "산업 경쟁력이 약해진다"와 같은 반대 논리도 익숙하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 논리가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니콜라스 스턴의 보고서 '기후변화의 경제학' © Cambridge University]
에너지 전환에는 실제로 비용이 든다. 태양광과 풍력만 늘린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다. 송전망 건설, 전력시장 개편, 지역 수용성, 산업 구조 전환이 함께 가야 한다. 누군가는 비용을 부담하고, 누군가는 기존 질서의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
미래를 고려한다면 지금 질문이 몇 가지 더 생긴다. 에너지 전환에는 비용이 얼마나 드는가, 그리고 에너지 전환을 늦추면 무엇을 잃는가. 영국의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Nicholas Stern)이 2006년 발표한 스턴 보고서 '기후변화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Climate Change)'에서 던진 핵심도 이 지점에 있었다. 니콜라스 스턴은 보고서에서 기후변화에 강하게 조기 대응하는 편익이 대응하지 않을 때의 경제적 비용을 크게 앞선다고 주장했다.
2050년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지금의 신문을 펼쳐본다고 상상해본다. 그 사람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둘러싼 논쟁, 전력 인프라를 둘러싼 갈등, 탄소배출을 중심으로 전기요금과 산업 경쟁력을 둘러싼 여러 공방을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1968년 경부고속도로 논쟁을 읽는 지금의 우리처럼 "그것이 왜 그렇게 논란이었지?" 하며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물론 단정할 수는 없다. 에너지 전환은 더 복잡하고, 해당 사안에는 더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다.
그래도 바라는 장면은 있다. 2050년의 사람들이 과거를 돌아봤을 때, 에너지 전환을 한때의 불필요했던 유행이 아니라 '당연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소를 보며 "그때는 왜 그렇게 의심했을까"라고 생각하듯이 미래 세대가 오늘의 논쟁을 보며 "그때 더 빨리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이다.
by 김원상(기후솔루션 언론 커뮤니케이션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