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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인터뷰
[거버넌스를 찾아서_브랜드와 ESG] 좋은 카피를 만드는 좋은 실체 '파타고니아'
2024.02.27

우리나라는 ESG의 G(Governance)를 ‘지배구조’라 번역해 사용한다. 하지만 지배구조를 다시 영어로 번역하면 거버넌스가 아니다. 지배구조는 말 그대로 기업의 '의사결정 및 이익분배 구조' 그 자체를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거버넌스의 의미는 기업을 이끄는 사람들의 행동과 과정에 더 가깝다. ESG.ONL의 '거버넌스를 찾아서' 시리즈는 거버넌스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와 사용을 위해 좋은 거버넌스를 가진 국내외 기업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창립 50주년에 주주가 뒤바뀐 파타고니아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지속가능경영 철학에 있어 단연 선두주자다.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이라는 문구는 소위 ‘미닝아웃(meaning out)’이라 불리는 MZ세대 소비문화에 불이 붙기도 한참 전인 2011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광고카피였다. 파타고니아에 훌륭한 카피라이터가 있다고 생각이 들만한 문구가 한 가지 더 있다. 창립 50주년이었던 2022년 9월 발표한 “Earth is now our only shareholder(이제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입니다)”라는 카피다. 당시 파타고니아의 창업주인 이본 쉬나드 회장은 지구를 위해 본인과 본인 가족들이 보유한 파타고니아 지분 전부를 기부했다. 이는 파타고니아의 주식 100%에 해당했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  ©Patagonia]


누가 지구를 대변하는가

이본 쉬나드가 기부한 지분 중 2%에 해당하는 의결권 주식은 파타고니아의 가치와 공익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신설된 신탁인 ‘파타고니아 퍼포즈 트러스트’에, 98%에 해당하는 무의결권 주식은 비영리기구 ‘홀드패스트 컬렉티브’에 양도됐다. 홀드패스트 컬랙티브는 지역환경단체 지원, 생물다양성 및 자연보호, 정계후보 지지 및 정치활동 등을 위해 신설됐고, 해당 활동은 파타고니아의 재무성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간 약 1억달러(1,330억원) 규모의 배당금을 받아 이어간다. 관련된 활동으로 회사지분의 100%를 지구를 위해 양도한 쉬나드 회장은 여전히 파타고니아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를 소유하는 것은 포기해도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쉬나드 회장의 결정은 좋은 거버넌스였나

쉬나드 회장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회사가 추구해온 가치 유지, 그리고 전 세계에서 일하고 있는 파타고니아 직원들의 고용승계였다. 회사를 다른 누군가에게 팔면 회사의 가치는 변질되기 마련이고, 임직원 역시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 회사를 상장시키는 방법도 있었지만 공개기업은 단기적 이익창출이라는 압박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쉬나드 회장은 파타고니아만의 새로운 방식을 설계해 지분 전체를 양도한 것이고, 이를 '공개기업으로 가는 길(going public)이 아닌 목적기업으로 가는 길(going purpose)'이라고 설명했다. 파타고니아가 가진 최대의 자산인 경영가치를 이어갈 수 있도록 리스크는 최소화하고, 수익을 내라고 재촉하지 않는 지구를 주주로 만들어 보호한 것이다.


파타고니아 vs. 자본주의

쉬나드 회장의 의사결정 배경을 생각해보면, 파타고니아 본사가 미국에 있기 때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ESG 투자가 '고객의 이익 만을 생각하는 수탁자의 신의성실의무(fiduciary duty)'에 위배한다는 견해가 다수다. 즉, 현재 미국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선한 일을 마음껏 하기에는 살펴야 할 주변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파타고니아는 공시 대상으로 분류되는 상장기업도 아니고, 금융기관이 지분투자를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쉬나드 회장은 기업의 관행을 바꾸고자 노력했고, 이를 통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변화도 꿈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선택을 극단적이고 실험적인 거버넌스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너의 혜안으로 쉬나드 회장의 선택은 회사의 가치를 중심에 둔 의사결정과 주주의 이익이 같은 선상에 설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카피는 좋은 실체에서 나온다.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라는 카피는 쉬나드 회장과 파타고니아가 실행하고 있는 가치 그 자체다.


by Editor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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