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돌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르는 요즘이다. 영화 삽입곡 '골든(Golden)'이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 1위에 오르는가 하면, 영화에 등장한 한국적인 요소 역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을 두고, 한국 제작사가 기획한 영화가 아님에도 한국의 전통과 현대적인 모습을 잘 고증한 점이 K-POP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문화가 세계적인 위상을 지녔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이어지는 중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문화와 예술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책임감 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활약하고 있는 K-POP 아티스트의 앨범을 친환경 소재로 제작하는 등 엔터테인먼트 사 차원에서 ESG 경영을 시도하는 사례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오늘은 영향력을 넓혀 나가는 K-POP 관련 분야 중 공연 업계가 도입한 ESG 활동을 살펴보고자 한다.
팬들의 ESG 실천을 하나의 콘텐츠로, 블랙핑크 콘서트
['테트라팩 코리아'와 블랙핑크의 협업 커스텀 생수팩 © 테트라팩 코리아]
지난 7월 5일, 블랙핑크가 세 번째 월드 투어 콘서트 'Dead Line'에서 신곡 '뛰어(Jump)'를 공개하며 그룹 활동의 재개를 알렸다. 2년 10개월 만의 그룹 활동만큼 주목받은 것은 공연장 한 편에 쌓여 있는 분홍색 생수팩이었다. 멸균팩 제조 기업 ‘테트라팩 코리아(Tetra Pak Korea)’와 블랙핑크의 협업으로 제작된 커스텀 디자인 생수팩은 특별했다. 지속가능한 공연을 표방하는 아티스트인 '콜드플레이(Cold Play)' 역시 공연장에서 플라스틱 생수 대신 생수팩을 판매했지만,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디자인을 적용한 생수팩은 처음이다. 콘서트를 찾은 관람객은 자연히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보다 굿즈의 의미까지 지닌 생수팩을 구매했고, 공연장 곳곳에 생수팩 수거함을 비치한 덕분에 많은 양의 생수팩을 수거할 수 있었다고 한다. 테트라팩 코리아는 수거한 생수팩을 화장지 등으로 재활용할 예정이다.
테트라팩 코리아 닐스 호우가드 사장은 “전 세계가 K-POP에 주목하는 지금, 이번 협업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지속가능한 패키징이 만나는 새로운 ESG 실천 모델을 공연 현장에서 구현한 사례였다”고 평가하며 “다양한 사업과 전략적 협업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환경 메시지를 전달해 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공연 주체가 적절한 환경을 만든다면 관람객 역시 지속가능한 환경보호 실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탄소발자국 측정 ‘YOUR GREEN STEP’ 참여 안내 ©YG엔터테인먼트]
팬들의 동참을 이끌어 낸 지속가능한 활동은 또 있다. 관람객이 공연장에 도착할 때까지 남긴 탄소 발자국을 측정하는 ‘YOUR GREEN STEP’ 설문이 바로 그것. 이 설문은 관객이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움직인 이동과 숙박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파악하고,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온실가스 저감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데이터 축적에 의미가 있다. 실제로 블랙핑크의 소속사 YG 엔터테인먼트가 2024년 1월부터 2025년 상반기에 주관한 4개 공연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요인은 비행기, 자가용, 대중교통 등을 이용해 공연장까지 이동한 '관객 이동'이었다고 한다. 데이터는 관람객을 위한 셔틀 운행과 같이 직접적인 서비스는 물론, 공연으로 비롯된 온실가스 배출 저감 등 지속가능한 공연을 구성하기 위한 기초적인 통계로 활용될 것이다.
블랙핑크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콘서트에 왜 이런 콘텐츠를 마련 것일까? 단순히 기업과 아티스트의 사회적 위상과 긍정적 영향력을 위한 것 만은 아니다.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지 않아 매년 더욱 더운 여름이 반복된다면, 여름철 공연과 뮤직비디오 촬영,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아티스트와 팬들의 건강과 의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외부 활동에 따른 직원의 안전사고, 사업장의 냉방 비용 증가 등 실제 경영활동에 차질을 입을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탄소배출의 책임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엔터테인먼트 사 역시 ESG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려를 발판 삼아 변화하는 워터밤
매년 여름 뜨거운 감자가 되는 공연도 있다. 바로 '워터밤'이다. 더운 여름날 시원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찾는 사람들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워터밤은 회당 상당한 양의 물을 동원한다. 덕분에 관람객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지만, 공연 시점이 가뭄이 발생하는 기간과 겹치는 까닭에 정말 필요한 곳에 써야 하는 물을 낭비한다는 비판 여론 역시 상당하다.
[워터밤 행사 후 남겨진 물총들 ⓒ 박준성 '트루' 사무총장 페이스북]
올해 워터밤을 둘러싼 화두는 바로 공연이 끝난 후 관람객이 두고 간 물총이었다. 공연 주최측인 '메이드온'이 지급하는 공식 물총과 관람객이 지참한 다양한 종류의 물총이 한 데 쌓여있는 사진은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화제가 되며 여러 사람에게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이는 워터밤 주최 측이 시도한 지속가능한 공연의 모습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후 남겨진 물총을 장난감 재활용 전문 환경단체 '사단법인 트루(이하 트루)'에 기부한 것이다. 사단법인 트루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장난감을 수거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바자회를 열거나, 소외계층에 기부하는 환경 관련 NGO다. 재사용할 수 없는 장난감은 분해를 거쳐 플라스틱 소재 '낱알'과 플라스틱 판재 '널'로 재활용한다.
워터밤이 트루에 기부한 물총은 분류 작업을 거쳐 3분의 1은 지역 아동센터 등에 기부될 것이라고 한다. 다시 쓰기 어려운 물총은 색깔, 크기별로 분류하고, 널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한다. 워터밤 측은 트루가 재활용한 널을 추후 진행할 공연의 포토존을 만드는 데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워터밤에서 발생한 쓰레기가 새로운 모습으로 공연장을 다시 찾는 셈이다.
메이드온은 워터밤을 둘러싼 여러 우려를 해소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하고 있다. 물 낭비, 공연 후 남겨진 과도한 쓰레기 등의 문제를 분석한 환경임팩트 리포트를 발간하고, 앞으로 진행하는 행사에는 물총 대여 시스템을 구축, 공연마다 물총을 재사용하는 방식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절수 장치를 사용하고, 수자원 보호 목표와 성과를 측정하는 물 절약 시스템을 구축해 그 결과를 평가하는 구조를 만들 예정이다. 공연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를 발전의 계기로 삼고자 노력 중인 것이다.
그 밖에 뮤지컬·연극·오페라 공연 극단도 공연 후 폐기하는 소품과 장치를 재활용하는 공유창고를 운영하거나, 지류 티켓을 스마트 티켓으로 대체하는 등 ESG 방향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마법 같은 순간을 선물하는 공연과 축제. 삶과 사랑을 노래하는 공연이 끝나고 무대의 막이 내려도 즐거운 일상이 계속될 수 있도록 업계 차원의 실천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더 커질 K-컬쳐의 영향력이 ESG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피어날지 기대가 되는 지점이다.
by Editor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