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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동향] 모르는 사람들과 감자튀김을 먹는 이유
2026.03.05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임은 특별한 계기 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은 골목길에 모여 놀았고, 실력이 조금 모자란 아이도 '깍두기'라는 이름으로 함께 어울렸다. 하지만 이 시대의 모임은 성격이 다르다. 의도적으로 찾아야 하고, 목적은 선명하며 관계의 지속성은 짧아졌다.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제법 견고한 틀 안에서 이뤄진 예전의 모임에 비해 지금의 모임은 더할나위 없이 느슨하다. 서로 알지 못하는 관계더라도 ‘감자튀김’, '달리기'와 같은 사소한 취향을 매개로 모임은 간단히 이루어진다.



관계 말고 순간만 공유합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중고 거래 앱을 중심으로 독특한 모임이 구성원을 모집하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패스트푸드점에 모여 감자튀김만을 산처럼 쌓아 놓고 먹는, 일명 '감튀 모임'이 그것이다. 이들은 만나서 함께 감자튀김을 나눠 먹고, 식사가 끝나면 별다른 여운 없이 흩어진다. 

일회성 모임이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 ‘경찰과 도둑’ 게임이 유행하면서부터다. 일반인들의 취향 영역을 넘어 가수 이영지와 같은 유명인도 직접 '경도(경찰과 도둑) 모임'에 참여했고, 나영석 PD는 이를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를 모집하는 신청폼 양식이 공개되자, 하루도 채 되지 않아 7만여 명이 신청했다. 경도의 유행은 가벼운 만남과 재미에 대한 대중의 높은 수요를 보여준다. 

사실 일회성 모임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반짝 유행이 아닌 세계적 흐름이다. 해외에서는 '라이트 커뮤니티'라는 이름으로 SNS를 통한 즉흥적이고, 게임같은 모임을 만드는 트렌드가 자리잡았다. 일회성으로 모여 달리거나, 저녁을 먹으며 함께 이 순간의 경험을 소비하며 관계의 부담을 덜어놓는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이영지의 경찰과도둑 © 채널십오야 유튜브 채널]



일회성 모임은 어쩌다 글로벌 트렌드가 되었을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를 꼽는다. 사람들은 점차 상대를 파악하고, 장기적인 신뢰를 쌓는 과정에 드는 감정적 비용을 최소화하려 한다. 집단에 개인을 맞추지 않고, 특정 목적을 위해 잠시 결속했다가 목적을 달성하면 흩어지는 유동적인 방식을 택한다. 관계의 밀도는 낮아졌지만, 개인의 자아와 가치관은 훨씬 더 선명해졌다. 꽤 오랜 시간 이어졌던 지난 팬데믹이 이러한 흐름을 가속하기도 했다. 비대면 문화에 익숙해진 세대에게 필요할 때만 잠시 연결되는 '온앤오프(On-Off)'식 관계는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사람 간의 관계 속 소모되는 시간적, 정서적 피로감을 줄이고, 일시적 즐거움과 신선한 자극만을 취하는 일회성 만남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만남이 늘어도 여전히 외로운 이유

이러한 만남에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감튀모임', '달리기'와 같이 명확한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한 모임은 취향이 세분된 사회 속에서 효율적으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자,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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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감튀모임' 포스터 © 당근 인스타그램]



하지만 유행의 이면을 살펴보면, 그 기저에는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시장조사 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이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59.2%, 30대의 52.8%가 일상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의지는 과거나 지금이나 같다"며 "그 열망이 경찰과 도둑 게임이나 감자튀김 모임, 혼술바처럼 '느슨한 연대'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분출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람 간의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현대인들은 감자튀김을 명분으로 내세운 짧고 가벼운 만남을 통해 결핍을 보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회성 모임으로 만남의 편리성과 효율성은 얻을 수 있겠지만, 관계의 밀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잃어버린 '당연한 이웃'

1, 2년 전쯤 SNS에 '깍두기 놀이 문화'가 회자됐었다. 과거 나와는 조금 다른, 우리에 어울리기에는 장벽이 있는 사람들을 우리에 포섭하는 놀이적 방식이었던 '깍두기 문화'가 회자된 이유는, 조건 없이 타인과 관계 맺고 포용하던 그 시절의 무해한 연결성이 지금의 우리에게 부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더 촘촘히 연결될 거라 기대했지만, 그 연결이 반드시 깊은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을 만날 수록 더 얕은 관계에 머무르게 되는지도 모른다. 앱에서 '모임'을 검색해 누군가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지금의 현상은 역설적이게도 사회의 자생 공동체가 붕괴한 증거이기도 하다.

일회성 모임은 현대인의 외로움을 잠시 달래줄지 몰라도, 짧은 만남 뒤 찾아오는 공허함까지 채워주지는 못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했던 건 감자튀김을 나눠 먹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언제든 동네 어귀에서 마주칠 수 있었던 '당연한 이웃'의 존재일지 모른다. 빠르고 가벼운 연결이 채워주지 못한 것은 무엇이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by Editor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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