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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동향] 영화가 끝난 뒤, 청령포는 지금
2026.04.07

주말 아침이 되면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 선착장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선다. 오전 9시에 도착했는데 이미 기나 긴 대기 행렬이 이어졌고, 나룻배를 타기까지 3시간을 기다렸다는 방문객들의 증언이 SNS에 잇따라 올라온다. 1,6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오버투어리즘 현장이다. 지난 2월 하순부터 장릉·청령포를 찾은 관광객 수는 누적 8만명을 넘어섰다.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를 찾는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강원특별자치도는 긴급 대응에 나섰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 쇼박스]



육지 속 섬이 감당하는 인파

청령포는 동·남·북 삼면이 남한강 상류에 둘러싸인, 서쪽은 절벽으로 막힌 반도 지형이다. 육로가 없어 오직 나룻배로만 드나들 수 있는 청령포는 '육지 속 섬'으로 불린다. 또한,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영월, 정선, 태백, 평창 일대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생대 퇴적암류를 보여주는 공원)을 구성하는 지질 명소이자 명승 제50호로 지정된 섬이다. 바로 이 청령포에 주말마다 하루 6천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영월군은 급기야 SNS 공지를 통해 오후 4시 이후 청령포에 도착 예정인 방문객은 당일 입장이 제한될 수 있다고 알렸다. 


나룻배가 실어 나르는 생태적 부채

오버투어리즘은 단순히 관광객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관광으로 지역 생태계와 주민의 삶의 질이 실질적으로 훼손되는 수준, 즉 수용 한계(Carrying Capacity)를 초과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청령포에서 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섬 내부를 채운 수령 600년 이상의 소나무 군락은 단종의 유배 시절부터 자리를 지켜온 생태적, 역사적 자원이다. 수만 명의 발길이 반복적으로 토양을 짓누르면 수목 뿌리계가 손상되고, 비가 올 경우 흙과 모래가 침식되어 씻겨 내려갈 수 있다. 국립공원 연구에서도 탐방객이 집중되는 현상이 탐방로 주변 식생과 토양을 훼손하는 주요 인자로 확인되고 있다. 청령포의 나룻배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발자국마다 쌓이는 생태적 부채 또한 함께 실어 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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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 국가유산포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3월 4일부터 13일까지 청령포 주변 관광지 음식점 100여 개소를 대상으로 위생 상태와 가격 표시 준수 여부를 점검하기도 했다. 갑자기 늘어난 관광객의 안전과 위생에 초점이 맞춰진 단기 대응이다. 그러나 관광객 수용 관리를 위한 장기적이고 제도적인 틀은 여전히 빈약하다. 국내에서 오버투어리즘 대응에 가장 먼저 나선 곳은 서울 북촌한옥마을로, 2024년 7월 관광진흥법상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전국 최초 사례였지만, 그마저도 별도의 강제 규제가 없는 야간 통행 안내 수준에 그친다. 명승지를 위한 방문객 총량제나 예약제 도입은 아직 논의 수준에 머무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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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포 휴관일 안내 © 영월군 인스타그램]



흥행 뒤에 남는 것들

영화의 흥행은 언젠가 가라앉는다. 문제는 그 이후다. 특히 SNS를 통해 특정 사진 명소가 급격히 유명해질 경우 짧은 기간 동안 집중된 관광객의 방문이 생태계를 급격히 손상시키고, 그 손상은 흥행이 식은 뒤에도 남는다. 청령포가 지질 명소로서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해주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방문객 환영 현수막이 아니라, 수용력 기반의 관리 계획이다. 관광 정책이 경제적 효과만을 성과 지표로 삼는 한 자연 및 역사 자산의 훼손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해 문화재 주변 생태계 훼손이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을 정책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청령포는 지금까지 600여년의 세월을 견뎌냈고, 이 섬이 앞으로의 세월을 견디게 하는 것은 제도의 몫이다.


by Editor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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