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매년 수백 페이지 분량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행한다. 이 보고서에는 글로벌 보고 이니셔티브(Global Reporting Initiative, GRI) 기준으로 환경 데이터를 정리하고,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 이하 ISSB) 프레임워크에 따라 기후 리스크를 서술한 내용이 담긴다. 한국은 2025년 기준 시가총액 상위 50개 기업 가운데 51%가 ISSB 프레임워크를 적용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작성했고, 2028년부터는 자산 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대상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제출이 의무화된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작성하는 기업의 비율만 보면 우리나라의 ESG 정보 공개 체계는 성숙 단계에 진입한 것처럼 보인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AI는 읽고 있을까?
하지만 투자자와 소비자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검토하는 방식은 이미 달라졌다. 기업 이해관계자들은 더 이상 200장이 넘는 PDF 형태의 첨부 파일을 꼼꼼하게 읽지 않는다. 챗GPT, 퍼플렉시티, 클로드, 구글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AI에 "이 기업의 탄소 감축 실적은?", "공급망 인권 정책은 어떻게 되나?"를 묻고, AI의 답변으로 판단을 내린다. 문제는 AI가 답변을 구성할 때 사용하는 정보의 출처가 반드시 공식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AI는 웹에 흩어진 뉴스 기사, SNS 언급, 제3자 평가 데이터까지 종합해 '요약된 기업 이미지'를 만든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내용이 아무리 상세히 명시되어 있더라도 AI가 읽을 수 없는 형태로 묻혀 있다면 온라인 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생성형 AI가 여러 웹 출처를 종합하여 답변을 보여주는 구글 AI개요 © Google]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전략이 '생성형 엔진 최적화(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 이하 GEO)'다. GEO는 원래 마케팅 분야에서 브랜드 콘텐츠가 AI 답변에 인용되도록 정보 구조를 최적화하는 기법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존의 검색 엔진 최적화(Search Engine Optimization, SEO)가 키워드의 검색 결과 상위 노출을 겨냥했다면, GEO는 AI가 답변을 생성할 때 특정 출처를 신뢰하고 인용하도록 설계한다. 핵심은 'AI가 이해하기 쉬운 구조'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 명확한 문장, 논리적으로 연결된 단락, 수치와 출처가 명시된 팩트 기반의 서술이 AI 인용 가능성을 높인다. 반대로 서술이 모호하거나 데이터가 형식 없이 산재해 있으면 AI는 해당 정보를 건너뛴다.
지속가능보고서 형식이 기업의 평판을 가른다
ESG 정보 공개에 GEO 관점을 적용하면 AI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정보의 출처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더욱 선명해진다. 대다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PDF 파일 형식으로, 장문의 서술형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AI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인용하기 어려운 구조다. 기업이 Scope 1·2·3 배출량을 성실하게 공시해도, AI가 분석하기 어려운 표 이미지 안에 해당 수치가 기입되어 있다면 AI 검색 결과에 반영되지 않는다. 기후 목표 달성 로드맵이 50장에 달하는 보고서 중반부에 단락 형태로 묻혀 있다면, AI는 이를 핵심 정보로 인식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AI는 해당 기업의 ESG 수준을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아니라, 외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기반으로 평가하게 된다. 이로 인해 기업의 그린워싱 논란이 쉽게 확산되고, 정작 실질적 성과를 낸 기업은 저평가될 수 있다.

[PDF 파일 형식으로 발행되는 기업 지속가능경영보고서 © 롯데건설 공식홈페이지]
선도적인 기업들은 이 변화에 이미 반응하고 있다. 종합해운물류기업 HMM은 공급망 탄소 계산기를 웹 기반으로 공개해 외부 이해관계자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조회, 인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아마존은 '서스테이너빌리티 익스체인지(Sustainability Exchange)' 플랫폼을 통해 기후 목표와 협력사 데이터를 구조화된 형태로 공개한다.

[HMM 공급망 탄소계산기 화면 © HMM 홈페이지 공식홈페이지]
이처럼 기업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라는 닫힌 형식을 넘어 AI가 읽고 인용할 수 있는 개방형 데이터 구조로 ESG 정보를 전환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가 확대되는 지금, 기업이 답해야 할 질문은 '무엇을 공시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공시할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AI가 읽지 못하는 보고서는 더 이상 읽히지 않는 보고서다.
by Editor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