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나 생수를 마시고 남은 빈병들을 버리지 않고,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빈병 무인회수기'란 사용한 음료 또는 맥주병 같은 공병을 기계에 투입하면, 제품 구매 시 포함되어 있던 자원순환 보증금을 현금 또는 포인트로 환급해 주는 무인 자동화 기기다. 종종 마트나 편의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빈병 무인회수기는 빈용기 회수와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빈용기 보증금 제도에서 시작됐다. 생각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빈병 무인회수기는 취지에 맞게 잘 운영되고 있을까.
유럽에서 활발히 시행중인 빈병 무인회수기
빈병 무인회수기는 유럽 국가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독일은 2003년부터 '판트(Pfand)'라는 공병 보증금 제도를 운영중이다. 소비자가 음료를 살 때 제품 가격과 별개로 병이나 캔에 대한 보증금(재사용 유리병 약 8센트(한화 약 140원), 일회용 페트병·캔 25센트(한화 약 450원))을 먼저 지불하고, 빈병 전용 무인회수기에 빈병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구조다. 보증금은 영수증에 출력되며, 물건 구매 시 사용할 수 있다.이 판트 제도로 독일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46%대로 상승했다.


[독일 베를린 마트에 설치된 빈병 무인회수기와 보증금이 적힌 영수증 © ESG.ONL]
노르웨이 역시 독일과 유사한 판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음료를 살 때 병이나 캔에 1~3크로네(한화 약 155원 ~ 465원)의 보증금을 추가로 내고, 마트 무인 회수기에 빈병을 반환하면 현금이나 기부 영수증으로 돌려받는 방식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이를 기업의 환경세와 직접 연동시켰다. 기업들이 재활용률을 높여 국가 전체 반환율이 95%를 넘기면 환경세를 전액 면제해 주는 구조다. 노르웨이는 매년 90%가 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병 반환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에서 공병 보증금 제도는 소비자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자원순환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높아진 회수율 뒤에 가려진 현장의 현실
한국의 빈용기 보증금 제도는 1985년 소주병에 처음 도입되었고 이후 대상 용기가 소주, 맥주, 음료 등 빈병으로 확대되었다. 현재 소비자가 빈병을 반환하면 70원에서 350원의 보증금을 편의점이나 마트 등 소매점에서 현금으로 돌려받는 구조로 운영된다. 모든 빈병이 해당되는 건 아니고, 겉면에 보증금 환불문구가 있는 재사용병이어야 반환 후 보증금을 환불 받을 수 있다. 2025년 우리나라 빈용기 전체 회수율은 약 98.5%에 달했으며, 이 중 소비자 직접 반환율도 2016년 29%에서 2025년 68.7%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빈용기 보증금 제도가 소비자 일상생활에 안정적으로 정착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연도별 빈용기 출고 및 회수현황 ©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
그러나 현장의 현실은 다르다. 일부 편의점과 동네 마트에서는 빈병을 놓을 공간이 없다거나 악취 등의 이유로 수거 요일이나 시간을 제한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 법적으로는 어디서나 반환이 가능하지만 구매처가 아니라는 이유로 편의점과 마트 등에서 공병 반환을 거절당하고 발길을 돌리는 소비자가 여전히 적지 않다. 인천 지역에서만 2022년 54건, 2023년 51건, 2024년 41건의 수거 공병 거부 신고가 접수됐다. 소주 1병당 12원, 맥주 1병당 13원에 불과한 취급 수수료를 받기 위해 공병을 장기간 보관하고, 수거차에 싣는 작업까지 도맡아야 하는 소매점주의 부담도 제도의 취지와 현장 사이의 간극을 넓히고 있다.
소매점의 짐, 사회가 함께 나눠야 할 때
공병 수거의 부담이 소매점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혜인 환경운동연합 자원순환팀장은 "재활용을 함께 해야 하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너무 큰 책임을 소매점들이 맡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이 무인회수기 설치 확대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도입된 빈용기 무인회수기는 설치 시 빈병 회수량이 40% 이상 증가할 만큼 효과가 입증됐지만, 국내 설치 대수는 2025년 기준 183대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대다수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고양시 구청에 설치된 빈병 무인 회수기 ©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
무인회수기 설치에 2,000만~3,000만 원이 드는 데다 2019년부터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가 지원하는 설치 비용의 비율이 줄었다. 2025년에 무인회수기 설치를 신청한 곳은 전국을 통틀어 9곳에 그쳤다. 빈용기 무인 회수기 설치 증대를 위해 정부에서 관련 예산을 늘리거나 지방자치단체가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재활용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일이다. 공병 한 병이 자원순환의 고리를 완성하려면, 소매점 한 곳의 짐이 아닌 사회 전체의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by Editor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