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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 사람은 죽어서도 탄소발자국을 남긴다
2024.05.14

인류의 탄소발자국은 지독하다. 자신의 죽은 몸을 태우면서까지 우리는 대기에 이산화탄소를 남기고 떠난다.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 중 하나인 화장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국토가 좁은 동아시아 국가인 한국, 일본, 대만의 경우 화장률이 90%가 넘는다고 한다. 일본은 거의 100%에 육박한다. 화장이 비좁은 국토와 복잡한 매장 절차의 대안인 것은 맞다. “난 죽으면 그냥 화장해 줘”라는 말은 마치 세상과 주변 사람에게 해를 덜 끼치겠다는 마음 씀씀이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상 지구에게는 그렇지 않다. 시신 한 구를 화장하면 160kg가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2023년 국내 사망자 수는 35만 2,700명이었다. 이 중 90%가 화장을 했다고 추정하면 2023년 화장 절차로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약 5만 톤(CO2eq)이 된다. 이는 내연기관 차량 약 10,000대가 1년 동안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비슷하다. 어떤 문제의 해결책처럼 보였던 화장이 기후위기를 맞으며 문젯거리가 됐다. 이미 활발한 사회적 논의로 자리 잡은 존엄사와 같이 내가 죽는 과정과 방법을 선택할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열심히 고민해 봄 직하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30일 만에 시신을 흙으로 만들어주는 미국 소재 기업 '리컴포즈'의 안치 시설  © Recompose]



흙으로 돌아가는 방법

2019년 5월,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인간 퇴비화(Human Composting)’ 법안이 통과됐다. 말 그대로 시신을 퇴비로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는 것만이 합법적인 처리 방법이었다. 법이 통과되는 데에는 ‘리컴포즈(Recompose)’라는 기업의 노력이 컸다. 리컴포즈는 가축의 사체를 퇴비로 만드는 것에서 착안해 시신을 흙으로 만드는 연구에 성공했고, 이 후에는 정책입안자들과의 만남과 논의를 거쳐 법안 발의까지 성사시켰다. 법안 통과 후에는 리컴포즈와 유사한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하나둘씩 생겼다. 그리고 콜로라도주, 오리건주, 버몬트주, 뉴욕주에서 법안을 잇달아 통과시켰다.


물로 돌아가는 방법

시신을 알칼리성 용액에 고온·고압 처리하는 '알칼리 가수분해(Alkaline Hydrolysis)' 방법도 있다. 시신의 분해가 끝나면 뼈, 그리고 당류 및 염류 등을 포함한 멸균 상태의 액체가 남는다. 액체는 환경에 무해하기 때문에 하수처리가 가능하고 유골은 화장이 끝난 이후와 동일하게 뼛가루로 만들어 가족에게 돌려줄 수 있다. ‘수화장(Water Cremation)’이라고도 불리는 이 방법은 매장이나 화장보다 훨씬 적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평가받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2003년에 처음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제는 20여 개 주에서 합법적으로 수화장이 가능하다. 미국 외에는 영국, 캐나다 4개 주 등 일부 영미권 국가에서 수화장을 시행하고 있다.


시행은 가능하지만 실행은 아직

이처럼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지만 아직은 전 세계적으로 매장이나 화장처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법안이 통과돼 시행이 가능한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인식과 관습의 벽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매장은 인류가 10만 년 전부터 시행하던 유서 깊은 방법이다. 화장은 그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종교적인 이유도 크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모두 시신을 땅에 묻는 관습을 이어왔고, 불교는 화장 문화를 갖고 있다. 미국 워싱턴주에서 인간 퇴비화 법안이 통과됐을 때 천주교계에서는 '시신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방법'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상원에 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신을 잘 썩지 않는 관에 가둔 채 땅에 묻는 것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자연에 양분이 되는 것보다 시신을 존중하는 일인지는 생각하고 따져볼 일이다.


by Editor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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