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예방의 날과 ESG]
함께 살아가기 위해 손을 잡는 사람들
2025.09.10
인구 10만 명당 27.3명. 2023년 한 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수치다. 2010년 이후 감소 추세이기는 하나, OECD 평균보다 두 배가량 높다. 최근 응급실을 찾은 자해-자살 환자의 비율이 10년 새 3.6배나 증가했으며, 특히 10~20대에서 급증했다는 통계가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2025년 9월 10일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 제정된 지 22년째 되는 날이지만, 한국의 자살률은 여전히 높고, 유의미한 감소세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간 분명 많은 지점이 바뀌었다. 우리 사회는 자살과 자해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와 지역 사회, 민간 기관이 협력해 해결해 나가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또한, 여성, 청소년, 성소수자 개별 특성에 따른 자살 예방 안전망 수립 및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2025년,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사례를 살펴본다. [2003년부터 2023년까지의 한국인 자살률 그래프ⓒ통계청 지표누리] 이웃의 삶, 지역 사회가 지킨다자살 고위험군에게 도움의 손길이 제대로 닿기 위해서는 이웃의 관심이 필수적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함께하는 '생명존중안심마을' 사업은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의 협력을 이끌어 낸다. 동네 병원, 학원, 슈퍼마켓, 파출소 등 다양한 기관이 자살 위험 신호가 보이는 사람을 조기에 발견하고 전문 기관에 연계한다. 이 사업은 24년 기준 전국 56개 시군구에서 시행 중으로 그 수는 늘고 있다. 서울시 강서구는 올해 4월 화곡1동과 화곡8동을 '생명존중안심마을'로 선정했다. 모두 1인 가구 비율이 높고, 구내 대표적인 주택 밀집 지역이다. 자살 다빈도 장소 순찰을 강화하고, 지역 내 약국의 위험 약물 판매를 모니터링하며, 생명 존중 캠페인과 교육을 병행하는 것이 선정에 주효했다. 특히 강서구는 지난 2021년 60세 이상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가양4단지아파트'를 '생명사랑 안심아파트'로 지정해 성공적으로 자살 예방 사업을 이끈 바 있어 더욱 기대를 더하고 있다.['생명존중안심마을'로 지정된 화곡 8동 외 ⓒ강서구청]인천광역시 역시 유사한 '생명지킴이'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2022년부터 3년 연속 '자살예방 우수지자체'로 선정된 인천에는 '분야별 생명지킴이' 2,632명이 활동 중이다. 2017년 전국 최초로 운영한 '생명사랑택시’ 기사들은 승객의 마음을 경청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전문 기관에 연계해 자살 예방에 큰 역할을 했다. 인천시는 이를 시작으로 '생명사랑약국’, '생명사랑병원’, '생명사랑학원’, ‘생병사랑숙박업소’ 등 여러 직업과 공간을 연결해 ‘분야별 생명지킴이’ 사업을 확장했다. 학원 원장이 수강생의 자해 흔적을 발견해 부모와 함께 치료를 돕거나, 약사가 손님의 우울과 불면 호소를 경청하고, 위로하며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로 연결하는 등 많은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시는 특히 생명지킴이들의 지속적인 교육과 전문 지원 연계 체계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2024 정신건강의 날 기념식'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마음건강 지원 사업 역시 기관이 입주민의 이웃으로 역할 하여 위기 입주민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전국 1,160개 임대주택 단지의 '마음건강위원회'는 관리소장, 복지 담당 공무원, 정신복지센터, 보건소 등 공공과 외부 전문가로 구성되어, 정신 건강 위험 입주민을 발굴하고 지원한다. 이들은 한 해동안 우울증과 저장강박으로 고통받는 입주민 1,128명을 도왔다. 한 예로, 증평군의 한 임대아파트는 관리비 연체 및 연락이 두절된 세대를 방문해 저장 강박으로 위기를 겪는 주민을 발견하고 지원했다. 지역사회의 봉사자들 20명이 함께 쓰레기를 치우고, 기관이 금전적인 지원을 더해 다양한 형태의 이웃이 위기 주민의 희망찬 삶을 위해 돕고 있기도 하다. 특색있는 기업-기관이 알리는 생명 존중의 메시지2022년 보건복지부와 틱톡, 사회복지법인 생명의전화가 맺은 MOU는 자살예방을 위한 민관협력의 좋은 예다. 한국 최초의 전화 상담 기관인 생명의전화와, 10대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틱톡이 보건복지부의 탄탄한 지원을 받아 '10대를 위한 생명 존중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저 '자살 예방 틱톡 챌린지'를 위한 MOU가 아닐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세 기관은 힘을 합쳐 5개월 동안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생명사랑 나를케어'는 8시간 동안 진행되는 후기 청소년 대상 교육으로. 청소년이 직접 결과물을 만들며 심리, 정서적 기능을 강화했다. 23년 9월까지 중학생 대상의 집단 교육프로그램 'LaLa'에는 9,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여했다. 사업 후에도 틱톡과 생명의전화는 계속해서 파트너십을 이어가고 있다. 생명의전화와 KBS가 공동 주최하는 '생명사랑 밤길걷기' 캠페인에 틱톡이 후원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생명의전화는 '틱톡 코리아 크리에이터 서밋 2025'에 참여해 틱톡 크리에이터를 대상으로 디지털 미디어 내 정신건강 문제와 해결 방향성을 제시하고, 위기 상황 시 이용가능한 자원 리스트를 안내했다.[CGV에 설치된 '온기우편함' ⓒ CJ뉴스룸] 고민 편지를 넣으면, 자원봉사자인 '온기우체부'가 손편지로 답장을 해주는 비영리 활동, '온기우편함' 사업을 하는 사단법인 '온기'는 CGV와 2021년부터 업무 협약을 맺었다. CGV 21곳에 위치해 사회의 심리적 안전망 구축을 꾀하고, 일상적 공간에서 우울감을 완화해 정신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돕는다. 이렇게 전해진 고민 편지는 2023년 한 해 6천 통이 넘는다. 사단법인 온기는 기업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과도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서울시설공단이 운영하는 추모공원의 우편함은 상실의 아픔이 있는 이들을 위로해 그 의미가 크다. 극심한 우울증을 토로하는 편지가 도착하는 경우, 심리 상담 전문 자원봉사자들이 1차로 답장을 쓰고, 각 지역에 있는 정신 건강 센터와 연결한다. 기업, 기관과 사단법인이 협력해, 마음의 위로를 주고 받는 행위를 넘어, 구체적인 자살 예방 방안까지 만들어 가고 있다.단순히 '생명이 소중하다'고 외치는 것을 넘어, 2025년 자살예방의 날에 들리는 목소리는 더욱 구체적이고 다정하다. 지역사회가 서로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당사자에게 꼭 맞춘 자살 예방 교육을 하기도 하며, 다양한 캠페인으로 자연스럽게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모두 손을 잡아야 할 때다.by Editor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