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인구통계학자 제니퍼 D. 스쿠바(Jennifer D. Sciubba) 박사는 그의 책 '80억 인류, 가보지 않은 미래(2023, 흐름출판)'에서 인구 문제를 전 지구적 관점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인구 감소 문제를 겪고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인구 증가에 따른 빈곤과 사회혼란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엔경제사회국(UNDESA,United Nations Department of Economic and Social Affairs)'의 '2024년 세계인구전망 보고서'는 2084년 전 세계 인구가 102.9억 명에 도달하며, 이를 견인하는 지역은 아프리카와 동아시아를 제외한 아시아 지역일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구 증가는 필연적으로 환경과 자원 소모를 가속화 할 우려가 크다. 누구도 굶주리지 않는 세상(Health for all, Hunger for none)[바이엘의 지속가능보고서 2024 하이라이트 표지 ⓒ바이엘]올해로 우리나라 진출 70주년을 맞은 글로벌 생명과학 기업 '바이엘(BAYER)'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여러 영역에서 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바이엘은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 '환경 발자국 감축(Reduced Ecological Footprint)', '가치 사슬 전반에 걸친 책임(Acting Responsibly along the Entire Value Chain)'을 지속가능성의 세 가지 축으로 삼고 있다. 오늘은 모두를 위한 건강과 '누구도 굶주리지 않는 세상(Health for all, Hunger for none)'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바이엘의 지속가능보고서를 살펴본다. 바이엘은 헬스케어와 농업 분야의 풍부한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중저소득국(LMICs,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바이엘은 기후변화와 인구 증가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중저소득국의 소규모 농가를 위해 농업 지식과 파트너십을 제공하고 혁신 종자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식량 안보를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바이엘은 하이브리드 감자 육종 기업인 '솔린타(Solynta)'와 협업하여 신품종 감자를 캐냐와 인도 지역에 유통했다. 이 감자는 보통 덩이줄기로 재배하는 방식과 달리 씨앗으로 유통되어 보관과 운송에 용이하고, 질병과 기후변화에 유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 바이엘은 전 세계 2천만 헥타르에 달하는 감자 재배 시장에 또다른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선택할 자유, 그 폭을 넓히는 일[피임 인식 개선 활동 ⓒ바이엘]뿐만 아니라 바이엘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현대 피임약과 기구를 공급해 중저소득국 여성에게 현대적 피임법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이를 통해 2024년 한해 동안에만 5,100만 명의 중저소득국 여성들은 바이엘의 제품으로 주도적인 가족계획을 세우고 건강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여성들은 자신의 몸과 건강, 사회 진출과 경제적 지위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바이엘은 현지 구매력에 맞게 제품의 가격을 조정하고, 제품에 대한 환자 접근 프로그램을 강화해 제품 가용성을 높이고 있다. 더불어 코로나19를 지나며 주목 받은 셀프 케어 분야에서도 바이엘의 지속가능한 행보는 이어진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은 아직도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누리지 못한다고 한다. 바이엘은 벽오지까지 닿기 어려운 전문 의료 서비스를 대신해 작년 한 해 7,300만 여 명에게 셀프케어 제품을 비롯해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선택할 때 도움이 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모두에게 모든 종류의 건강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ESG경영으로 실천하는 비전[탄소감축 목표 ⓒ바이엘]바이엘은 제품을 통한 지속가능성과 함께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다양한 목표를 수립하고 실천하고 있다. 바이엘은 2029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의 42%를 감축하고, 시설 운영 등으로 발생하는 불가피한 탄소배출은 탄소상쇄를 통해 2030년 넷제로에 이르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이를 위해 바이엘은 재생에너지 사용, 공정 최적화를 위한 투자, 전기차 전환 등의 실천 방안을 점진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24년 바이엘은 온실가스를 21.3% 감축했다고 밝혔다. 이는 온실가스 최종 감축 목표의 절반 이상에 이르는 수치이다. 이 외에도 바이엘은 2030년까지 모든 제품의 패키지를 100%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생산하고, 조달 비용의 36%를 탈탄소화를 선도하는 공급업체에 배정하는 등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50년까지 관리직급의 여성 채용 비율을 2024년 44.1% 수준에서 50%로 확대하고, 육아 휴가, 건강 및 휴식 프로그램 제공 등 건강한 직장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제도 정비와 수립에 힘쓰고 있다.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삶뿐 아니라 이를 위해 노력하는 직원의 삶 역시 바이엘이 추구하는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145개국에 진출해 인류의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한 바이엘의 행보는 미래 세대와 그들이 살아갈 터전을 지키는 일로 확대되었다. 이는 모두를 위한 건강과 누구도 굶주리지 않는 세상이라는 바이엘의 비전이 탄소배출을 줄이고 재활용품을 확대하는 등 환경을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뜻한다. 더불어 업무환경의 유연화와 여성의 사회진출을 독려하는 바이엘의 ESG 경영은 지속가능성이 지닌 다양한 의미를 시사한다. 바이엘의 전방위적인 ESG 전략은 바이엘의 연간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by Editor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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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고] 이충걸 (전 GQ코리아 편집장)
"자가(自家) 망상증"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집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증빙 자료이자 공간 저 너머의 갈망이 되었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 내내 같은 버스를 탔고, 같은 음악을 들었던 친구가 부모 도움으로 집을 사서 동네를 떠났을 때, 청년은 버스가 반지하 자기 집 앞에 서지 않는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챈다. 그때 집이란, 얼마나 사랑하고 어떻게 공감했는지를 기억하는 장소라는 말은 청년에게 얼마나 한가롭게 들릴까? 남겨진 이들의 탄식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 부모는 보증을 잘 못 서서 나까지 여태 알거지로 살았어. 내 부모는 빛 대신 빚을 물려 줬어. 나 대학교 때까지 11평 집에 네 식구가 살았어. 나는 전세 대란에 떠밀려 고시원까지 왔어. 어느 순간 "나는 왜 아직도 월세에 살고 있지?"라는 질문은 덮어쓰기하듯 "왜 나는 실패한 것 같지?"로 둔갑한다. 지금은 싫든 좋든 주거 안정성, 미래 자산, 부모 도움 없이 이룬 유일한 업적이 되는 '자가(自家) 권위주의'의 시대이기 때문에. 욕망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는 우아하고 관능적이지만, 집에 관한 욕망은 그보다 훨씬 촘촘하고, 식욕과 더 가깝다. 다소간의 좌절과 쪽팔림으로 엮였달까. 어떤 관점으로는 조금 우습고 살짝 서늘하다. 왜냐하면 집은, 놀랍게도 개인 사례와 통계, 균열된 감정을 결합해 가족 내부 질서를 파괴하는 새 방식이기 때문에. 이젠 가족 안에서 조차 계급이 나뉘었다. 서로 다른 경제적 지층에 머무르는 한 형제라고 같은 세상에 산다고 말할 수 없지.침묵의 이유이자 질투의 근거이며 저지된 분노. 집은 동서남북, 쉬지 않고 불타오른다. 오늘도 서울 모처에서는 있는 집 부모가 자녀에게 아파트 청약을 선물하는 중이다. 집은 또 하나의 명세서라서 부모는 계약서를 써주고, 자식은 거기에 사인한다. 그렇지만 등기 이전이란 단어가 횡재처럼 횡횡하는 광경을 누가 선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떤 땐 너무 화가 난다. 도대체 왜 뉴스는 허구한 날 아파트 값이 올랐다고 호들갑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연예인 집 좀 그만 내보내라. 카메라가 대리석 바닥, 천장까지 닿는 창, 전자 벽난로와 반려견이 뛰노는 테라스까지 핥고, 주방 수납장에 드레스 룸의 행거를 훑으면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소리가 예의 바른 내 구강을 비집고 나온다. 때 맞춰 자막이 "이 집, 실화입니까?" 요 지랄 하면 "와씨,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댓글이 창궐한다. 아, 이건 진짜 하우징 판타지의 재생산 아닌가. 뭔가 반복해서 본다는 건 결국 믿게 된다는 방증 아닌가. 매초마다 광고, 예능, 콘텐츠, 드라마가 합세해서 소유의 절대 가치를 떠벌린다. "너는 좋은 집에 살아야 돼. 넓고, 깨끗하고, 볕도 잘 들고, 무엇보다 자기 명의라야 돼." 게다가 드라마 캐릭터는 허구한 날 강남 아파트에 산다(그 놈의 강남. 오뎅 하나도 더 비싸고, 압구정 그 비싼 땅에 전신주 전선은 비에 젖은 인디언 물귀신처럼 얽혀 있고, 매장 사원들이 사장인 척 나대는 그 강남.) 유튜브의 부동산 채널은 사이렌 저리 가라로 속삭인다. "지금 사야 돼." "여기 폭등한다니까?" "영끌은 미친 게 아니야. 전략이고 투자고 계산이야." 전세 없는 사회를 예언하며 지 말 안 들으면 벼락 거지 된다고 공갈치면, 카메라는 좋다고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스캔한다. 아이를 안고 들어가는 엄마와, 응접실에서 책을 읽는 아빠와, 모든 장면을 품은 주방의 수전과, 대리석을 펴 바른 화장실과, 성모 마리아처럼 포근한 조명. 그것이 당신의 미래라고 윽박지르는 것이다. 이 시절의 한국에서는 "자가냐, 전세냐"라는 말이 관계의 국면을 결정한다. 소개팅 자리에서, 대출 창구에서, 가족 모임에서도 질문은 성가시게 따라붙는다. 여기엔 묵직한 전제가 있다. 내 명의의 집은 정착이지만, 임대는 임시 혹은 불안한 거주. 고관대작들은 포용하는 사회를 외치지만, 그런 구호 같은 건 우리 동네까지 닿지도 않고, 대출 심사 기준에서 탈락한 사람을 품지도 않는다. 내 집이라는 절대적 권능이 불타오르는 현실 속에서 사회는 더러운 컨버스, 라면이 식은 양은 냄비, 보증금 3천 만 원으로 몸부림치는 청년에게까지 속삭인다. 집이 없는 사람은 불완전해. 집은 게임이야. 누가 먼저 들어가느냐, 누가 젊음을 덜 낭비하느냐. 그리고 청년은 그것을 믿었다. 아주 깊이, 뼈처럼.하지만, 아시다시피 유럽은 거개가 임대주택에서 산다. 베를린 시민의 80퍼센트는 세입자고, 파리는 60퍼센트, 코펜하겐의 절반 이상. 그들은 정부와 시가 제공하는 장기 공공임대 시스템 아래서 갈등 없이 산다. 대출은 무, 이자에 쫓기지도 않고, 거주 형태의 초조 없이 인생에 몰두한다. 그렇게 보면 임대의 존엄은 소유의 반대말 같기도 하다. 계약 너머 인간적인 거주랄까. 그렇지만 여기선 다들 알아서 제 영역을 축소한다. "어차피 내 집도 아닌데."어차피 남의 집에서 세입자는 이사 계획이라는 샴 쌍둥이하고 산다. 2년 혹은 4년, 만기 시점이 육박해오면 검색에 불이 붙는다. 계약 연장은 곧 인상이며, 고정된 삶이란 없다. 전세는 영끌의 통로, 월세는 일종의 실패. 9월에 새 거처를 찾아야 하는 청년은 삼겹살을 구울 옥상이나 베란다를 희망 목록에 넣는다. 세입자의 순진한 공상이 아이러니하도록 슬픈 것이, 모니터의 부동산 페이지를 마구 스크롤하는 밤, 그는 화면에서 매물 대신 시든 얼굴을 보고야 말 것이다. 집은 '사는 곳'이지 '사는 것'이 아닌데, 이 세대의 집은 집보다 크고, 인간보다 중요하구나. 이러니까 "거기서 살고 싶다"는 말이 "빚져서라도 사고 싶다"는 뜻으로 바뀌는 거지. 그리하여 그는 서울의 집 한 채를 위해 다섯 계절을 보냈다. 버티는 계절, 준비하는 계절, 초조한 계절, 체념하는 계절, 계산하는 계절. 미래는 대출이 다 쓴 신용처럼 말랐다. 지옥이란, 미래를 저당 잡힌 현재의 또 다른 이름. 야근은 당연했고, 급여의 60퍼센트를 저축했으며, 커피도 치킨도 마다했다. 연애는 하지만 결혼은 삭제했다. 같이 살 집이 없어서. 실현되지 못 할 생각은 더 끈질겼다. 그는 개인의 생을 시장의 오차범위 안에 매몰시켰다. 지금이 마지막. 놓치면 다시는 서울에 발 붙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여섯 계절이 바뀌어도 집은 오지 않았다. 불가능한 꿈, 잡히지 않는 희망, 흘러가는 환영(幻影). 집은 무거웠다. 콘크리트와 욕망의 비율은 같았다. 지금을 불살라 나중의 벽을 지으려 했으나, 벽은 그를 지켜주지 않았다. 요람에서 벗어나자마자 내 집을 꿈꾸다 좌초한 청년에게 어머니 지구는 묻는다. "넌 왜 그렇게 나를 벽으로 감싸려고 하니?" 10년 전, 남산 자락에 집을 짓기 전에는 성수동의 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내 선택은 아니었다. 나는 예전 집이 좋았다. 나는 살짝 산중턱에 걸쳐 있어서 사철 높은 바람이 부는 그 아파트에서 평생 살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겨울, 엄마가 저 아래 재래시장에서 무 두 개를 사서는 그걸 들고 집까지 올라오는 걸 보고 평지에서 발을 디딜 수 있는 데로 옮겼다. 선택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흔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 또한 내 책임이었다. 이사하고 보니 거기가 '사는 곳'인지 '사 놓은 공간'인지 헷갈렸다. 외벽은 아름다운 포스트모던 시대의 유리였고, 안전한 동시에 깨끗했다. 그런데 어쩐지 새 집의 사회성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파트 정문 앞에 엄청 큰 마트가 없었다면 어쩌면 무척 쓸쓸했을 것이다. 이윽고 몇 년이 지나 남산 모처에 집을 지었다. 내 전공은 건축공학과지만 이 집을 지은 것으로 효용성이 다한 기분도 들었다. . 요즘 짓는 아파트엔 프리미엄, 와이드형, 마스터 존 같은 단어가 따라붙는다. 건설사의 언어는 건축이 아니라 마케팅이니까. 이때 ESG가 적절히 끼어든다. 고효율 자재, 태양광 패널, LED 조명, 친환경 벽지, 스마트 계량기...그러나 공간의 진짜 구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벽이 얼마나 호화스러운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벽이 누구를 밀어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라서. 도시는 집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그 안의 사람은 점점 바깥으로 멀어진다. 모든 설계도에 개인의 특성은 제외되어 있으며, 사회적 형평성은 평면도에 등장하지 않는다. 아파트 분양 영상은 친환경 마감재를 강조하되, 인근 생태계 훼손은 말하지 않는다. 시침 뚝 떼고 친환경인 척 소비자를 속이는 그린워싱은 참 부드럽고 설득력도 있다. 겉으론 푸르러도 속은 곯은 나무처럼.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 집은 누구를 위해 지은 건지, 화면 바깥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자주 궁금하다. 지구가 집을 짓는 걸까, 집이 지구를 허무는 걸까. 대단지 아파트를 지을 때 환경 항목이 얼마나 고려되는지는 의문이다. 건설 도중의 에너지 낭비, 절토와 메우기의 구조적 압력, 사라지는 녹지와 동물 서식지, 모든 것이 조감도 한 장의 이미지, 공원 조성 예정이라는 말 한 줄로 상쇄된다. 그 자리에 있던 마을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그 에너지는 누구에게 쓰일까? 혹시 3대가 사는 집이 아니라, 임대수익을 기대하는 부자의 통장을 불릴까? 에너지 효율과 구조적 비효율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이때 보다 미묘한 항목이 뒤따른다. 건설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증빙자료로 내세우는 것은 종종 커뮤니티 공간, 어린이 놀이터, 노약자 편의 설비 같은 것들인데 놀이터에는 아이가 아주 적고, 커뮤니티 센터는 예약제로 운영되며, 벤치엔 아무도 앉지 않는다면? 집을 짓는다는 건 단지 구조물을 세우는 기술적 해답뿐만 아니라 거주의 윤리에도 답해야 한다. 도면을 그리기 전에 그 집에서 펼쳐질 하루하루를 감각해야 하고, 자재를 고르기 전에 땅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며, 타인의 삶에 무엇을 예상하고 허락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누가 살 수 있고, 누가 밀려나며, 누구를 위해 준비했는지를. 솔직히 너무 많이 기대하진 않는다. 정서적으로 깊지만 논리적이며, 비관 속에서도 윤리를 요청하는 이야기 같은 건 기업의 우선순위와 좀 먼 듯 보여서. 그냥, 다음 번에 지을 땐 작은 평수의 조망도 신경 좀 써달라고, 낮은 층에도 햇빛이 잘 들게 해달라고, 해괴한 정원석에 돈 들이지 말고 그림자가 머무르는 나무 한 그루 더 심어 달라고만 하고 싶다. 그나저나 아파트가 도시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땐 무엇을 지켜야 하나? 가끔 건설사의 아파트 도면을 본다. 어떤 미련 때문에. 사방으로 터진 창, 확장형 거실, 드레스 룸, 파우더 룸, 다용도실이 따로따로, 킹 사이즈 침대, 벽에서 벽까지 이어지는 책장을 상상하다 말고 왜들 그렇게 넓은 집을 원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면적은 곧 존재감인 걸까? 타인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자기 확인의 구조물? 아, 맞다. 세상에는 평수라는 단위가 있었지. 대한민국에서 숨 쉴 권리는 평형 수로 보증되지, 참.숫자는 늘 현실보다 넓은 데를 가리킨다. 인간 종의 위계가 면적으로 결정된다는 발상은 원시적이되, 더 정교한 형태로 증식했다. 그래서 이 시절의 누구도 "작은 집에 살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큰 집은 건축이 자초한 계급 시스템이라서. 24평은 그렇다 치지만, 34평은 타인의 유의미한 눈빛을 갈취한다. 46평부터는 말이 달라진다. "그런 집은 좀 살만 하지." 근데 살만 하다는 말은 무슨 소리지? 방 하나 더, 죽은 시간을 쌓아두는 벽장 하나 더, 그런 얘기야? 이때 "저 사람, 래미안에 산대"라는 말 한 줄의 무게는 "그런 데 살만 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진실을 기꺼이 함축한다. 나는 대놓고 조소한다. 한강변으로 이사해 날마다 흐뭇해 죽겠어도, 매일 내다보며 행복에 자지러지진 않을 걸. 한강변에 산다는 훈장에는 올림픽 대로며 강변 도로의 금속 천둥 같은 소음은 제외돼 있을 걸. 집이 넓어 봤자 청소만 늘 걸. 넓은 만큼 외로움도 커질 걸. 안 보이는 틈새는 공처럼 부푼 먼지 차지일 걸. 비싸고 넓은 집이 주는 쾌적함은 때로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이 많았다. 롯데 타워에 살면 담배 하나 사자고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하고, 인색하게 열리는 창문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할 거야. 전기세 무서우면 거기 살지도 않았겠지만, 어쨌든 청풍명월의 기쁨은 모를 거야. 청소하는 분을 시켜 너무 깔끔해진 공간은 필시 정리된 슬픔 속으로 밀어 넣을 거야. 거긴 진짜 집이 아니라 세트 같아서 뭔가 잠깐 대여한 기분이 들 텐데, 그런 데서 어떻게 살지? …시비 걸어 봤자, 속만 쓰리는구나.집은 땅 위에 지어지지만 때로 사람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집에도 나의 밥상이 있고, 나의 밤이 있고, 나의 울분을 삼켜주는 벽이 있다. 비가 새는 천장, 무너진 벽, 도배가 벗겨진 곳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집은 보호 받고 싶은 마음. 내가 누군지 잊지 않으려는 장소. 주소가 아닌 관계의 지도. 이젠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한다. 집을 상품 아닌 권리로 정의해야 하고, 그 권리는 등기 여부에 따라 위축되지 않아야 하며, 소유보다 중요한 가치는 안정감이라는 것에 얼른 합의해야 한다. 존엄은 머무름과 일상, 반복과 애착에서 오는 것. 그러므로 집의 출발점은 작은 방, 한 사람이 편히 누울 수 있는 바닥에서 시작되어야할 것이다. 우리가 집에 원하는 것은, 내 자리를 땅에서 찾는 것.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것, 그날 밤, 은종처럼 퍼지는 웃음 소리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문장을 쓴다. 집을 '갖지' 않고 '살고' 싶다. by 이충걸(에세이스트, 전 GQ코리아 편집장, 장편소설 ‘너의 얼굴’저자 )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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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_현장]
제 2회 대한민국 사회적 가치 페스타를 가다
드디어 두 번째 '대한민국 사회적 가치 페스타(Korea Social Value Fest)(이하 페스타)'가 시작됐다. 8월 25일, 26일 양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페스타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디자인하다(Designing the Sustainable Future)'를 주제로 170여 참가조직의 부스, 정부와 기업, 학계가 두루 함께하는 발표와 토의 세션 등 풍성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페스타 현장 동선이 고민될 때 ESG오늘이 직접 둘러보고, 추천하는 부스를 참고해 보자. [지역 상생 강화 소셜벤처기업, 로컬러(Locolor) 마켓 부스 ⓒ ESG.ONL/ESG오늘]① 협력의 길 - 지역 상생 강화: 로컬러(Locolor)'로컬러(Locolor)' 부스는 익숙하면서도 귀여운 캐릭터 비주얼로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머물게 한다. 대전광역시의 ‘꿈돌이’, 수원특례시 ‘수원이’ 등 인기 있는 지역 캐릭터를 탄생시킨 로컬러는 지역 자원을 활용한 제품 및 콘텐츠를 개발하는 소셜벤처기업이다. 이름 그대로 ‘로컬에 컬러를 더하다’라는 뜻을 담아, 특정 지역의 매력을 전달하는 브랜드를 구축하고 수익 일부를 환원하며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을 만들어가고 있다.['탄소저감커피'를 제공하는 이퀄테이블 ⓒ ESG.ONL/ESG오늘]② 협력의 길 - 기후위기 극복: 이퀄테이블원두 1kg당 약 15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커피와 탄소배출의 연관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준 이퀄테이블의 ‘내일의 커피’ 부스. 이들은 외부 환경평가 전문기관과 협력해 LCA로 탄소발자국을 정밀히 측정하고, 생산부터 패키징까지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체계적으로 줄여가는 ‘탄소저감커피(Low Carbon Coffee)’를 선보였다. 부스에서 시음도 가능한 이 커피는 탄소중립인증을 받은 농장에서 유기비료,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며 최대한 물 사용을 저감하는 방식으로 원두를 재배한다고 한다. 부스에서는 내일의 커피 한 잔이 줄이는 탄소 수치를 시각화해 실제 탄소 저감 효과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실제 호텔 등의 기업들이 이퀄테이블의 커피를 사용하며 커피사용량 테이터를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활용한다고 한다. [그린오션스의 굴껍데기 친환경 자원화 제품 ⓒ ESG.ONL/ESG오늘]③ 협력의 길 – 자연순환 촉진 : 그린오션스우리나라는 세계 2위의 굴 생산지다. 특히 통영 한 곳에서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굴의 80%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뒤에는 심각한 환경 문제가 숨어 있다. 연간 굴 생산량 35만 톤 중 4만 톤의 굴을 얻기 위해 무려 31만 톤의 껍데기가 폐기물로 나온다고 한다. 지난 20년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현재 100만 톤 이상 누적된 굴껍데기들이 동해 바다에 버려지고 있는 상황에 주목한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그린오션스라는 회사다. 그린오션스는 굴 껍데기의 주요 성분인 주성분인 탄산칼슘에 주목하여, 미술교육용품부터 플라스틱 충전재, 다회용기, 건축 보드, 인조가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친환경 업사이클링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행복 얼라이언스의 '행복사진관' 부스 ⓒ ESG.ONL/ESG오늘]④ 미래세대의 길 - 행복 얼라이언스 : 행복사진관페스타 현장에 모인 뜨거운 관심만큼 관람객이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는 부스들도 있었다. 행복 얼라이언스 부스도 그 중 하나다. SK행복나래가 운영하는 행복 얼라이언스는 아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제공을 목표로 다양한 캠페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행복사진관 부스에 입장하면 행복 얼라이언스와 함께 성장하는 아이의 여정을 함께할 수 있다. 어려움을 겪는 아이에게 다가가 건강한 식사와 함께하는 일상을 돕고, 단순한 성장을 넘어 자립까지 이어지는 행복 얼라이언스와의 동행을 영상시청과 체험 프로그램으로 경험할 수 있다. 사진관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함께 기념사진을 남길 수도 있다. 동선에 따라 이동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행복 얼라이언스의 서비스 정보는 덤이다. [피스하나가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제공하는 제품 ⓒ ESG.ONL/ESG오늘]⑤ 협력의 길 – 기후위기 극복 : 피스하나상품성이 부족해 폐기 처분되는 농산물들, 정말 그냥 버려야만 할까? 피스하나는 외관이나 규격 미달이라는 편견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농산물들을 원료로,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향기와 기능성 제품을 창조하는 업사이클링 혁신 기업이다. 아로마 오일부터 기능성 바이오 제품까지,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친환경 제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피스하나는 단순한 제품 제조를 뛰어넘는 지속가능한 순환 생태계의 구현을 지향하고 있다. 폐기 위기에 처한 자원들에게 새로운 존재 이유를 부여하고, 지역 농업 공동체와의 상생 파트너십을 통해 환경 보전과 지역 경제 활력이라는 이중 가치를 동시에 실현해내고 있다.[사회연대은행 부스와 금융젠가 ⓒ ESG.ONL/ESG오늘]⑥ 협력의 길 – 함께 만드는 세상 : 사회연대은행사회연대은행은 사회적금융을 기반으로 한 사회문제 해결을 제안한다. 자립준비청년, 저소득 혹은 저신용자, 소상공인과 같은 금융취약계층이 금융자립을 이룰 수 있도록 긴급자금 지원부터 재무 솔루션, 금융교육 제공 등의 문제해결 방안을 제공한다. 이러한 지원으로 취약계층이 안정을 찾고, 우리 경제생활에 기여하게 되는 선순환을 만드는 사회연대은행 부스에서는 사회적금융에 대한 지식을 확인하고, 쌓을 수 있는 액티비티와 신용점수 관리법을 알려주는 젠가를 체험할 수 있다. 후원에서부터 취약계층 지원, 그리고 이들의 자립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사회연대은행에서 간접경험 해 보자.by Editor L보러가기 +